경미한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안하나? 정책숙려제로 푼다지만 실효성은 의문

중앙일보

입력 2018.11.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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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입개편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영란 전 대법관. 변선구 기자

교육부가 두 번째 정책숙려제 안건으로 학교폭력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가해자 처벌 수준이 교내봉사 같은 경미한 학교폭력 건에 경우 학생부에 기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올 상반기 학생부 기재 개선 방안을 논의했던 첫 번째 정책숙려제의 경우 논의 기간 동안 공정성 시비에 시달리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교육계에선 이번 학교폭력 안건에 대해서도 숙려제를 통한 큰 실익이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8일 교육부가 정책숙려제 2호 안건으로 제시한 학교폭력 개선 방안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먼저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사항 중 경미한 처벌을 받은 경우(서면사과·접근금지·교내봉사)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위와 같은 경미한 폭력의 경우 피해 학생과 학부모가 자치위원회 개최를 희망하지 않을 경우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상돈 학교생활문화과장은 “경미한 폭력의 경우 학교장에게 자체 종결 권한을 부여하고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육부의 안”이라면서도 “최종 안은 국민 의견 수렴을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전문가와 교사, 학생, 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토론 과정을 통해 결과를 도출할 방침이다. 이와는 별도로 일반 시민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도 함께 진행된다.  
 
 정책숙려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한 이슈에 대해 전문가 토론과 여론조사 등의 과정을 거쳐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제도다. 지난 3월 교육부는 정책숙려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통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해 국민의 지지와 공감을 잃고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됐다, 국민의 적극적 참여로 눈높이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숙려 안건은 교육부 자체 홈페이지나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 올라온 이슈 중에서 선정심사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결정한다. 첫 번째 숙려제 안건은 지난 7월 마무리 된 학생부 기재 개선 방안이었다.  

지난 7월 교육부는 정책숙려제 1호 안건으로 학생부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최종 결론을 낼 때까지 숙려제 참여 단체 간에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전교조 등 4개 교육단체는 “숙의과정에서 시민정책참여단이 쟁점 항목을 투표하기 전에 교육부가 ‘안내’란 형식으로 정부 입장을 알리는 등 비상식적인 일이 있었다, 숙려 결과를 교육부 안으로 유도하기 위한 심각한 개입 행위”라고 비판했다.  
 
 정책숙려와 비슷한 취지로 진행된 대입 공론화 논의도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1년간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명확한 결론을 얻지 못한 채 1년을 허비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특히 진보교육단체인 좋은교사운동조차 “1년의 시간을 보내고 2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가면서 내놓은 결론이 참으로 실망스럽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지 못하고 공론화에 맡겨 큰 혼란을 초래한 교육부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공론화 남발이 오히려 교육정책의 혼선을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교육학과)은 “처음부터 교육부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사안을 시민들에게 떠넘긴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의 사립대 교수는 “‘숙려제’는 원래 숙의 민주주의의 일환으로 지방자치에서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북돋는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역 주민의 이해관계 등 찬반 세력이 엇비슷했던 원자력 문제와 달리 교육정책은 목소리 큰 사람들의 의견만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