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자 5명이 노벨상, 하버드대 전설 브룩스 교수 만나다

중앙일보

입력 2018.11.0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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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행정대학원이 1966년 이름을 바꾼 하버드 케네디 스쿨. 세계적 수준의 공고 정책 대학원이다. 정근모 박사는 MIT 교수로 핵융합을 연구하면서 이 대학원의 과학기술 정책과정을 공부했다. [사진 NAS]

매사추세츠 공대(MIT)에 근무하는 동안 나는 미국이 과학기술 정책을 어떻게 세우고 집행하기에 강대국이 될 수 있었는지를 배우겠다는 오랜 꿈을 실천에 옮겼다. MIT와 같은 도시의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이 신설한 ‘과학기술 정책과정’에 등록했다. 과학기술 행정의 이론과 실제 정책을 배우고 토론하며 미래를 구상하는 최고경영자(AMP) 과정이었다. 

하버드대 응용과학대 학장을 지내면서 과학기술과 행정의 결합을 시도한 하비 브룩스 교수. 브룩스 교수의 물리학 강의르 들은 학생 5명이 훗날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강의가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기로 유명했다. [사진 NAS]

나를 포함한 등록 학생 35명은 이미 각계에서 활동 중이어서 교육은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에 이뤄졌다. 공부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없으면 계속 다니기 어려웠다. MIT 교수와 하버드 과학기술 정책과정 학생을 양립했던 나는 한동안 개인 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미국을 넘어 세계의 과학기술 정책들을 두루 배우고 훗날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 동료와 친구를 사귈 수 있었기에 보람도 컸다. 
수강생 중에는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병원장도 있었는데 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미 보건교육복지부(HEW) 고위직으로 발탁됐다. 원자력위원회(AEC) 위원이나 과학재단(NSF) 간부로 임명된 사람도 있었다. 인맥을 넓히고 미국 과학기술 행정을 파악하는 데 이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이 과정은 하버드대의 도널드 프라이스(1910~95년) 행정대학원장과 하비 브룩스(1915~2004년) 응용과학대 학장이 공동으로 만들었다. 프라이스 원장은 밴더빌트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정치학자로 미 행정부의 예산국·국방부를 거쳐 포드 재단에서 부회장으로 일했으며 58년 설립된 하버드 행정대학원의 초대 원장이 됐다. 이 대학원은 내가 들어간 그해 명칭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하버드 케네디 스쿨’로 바꿨으며 프라이스는 다시 초대 원장이 돼 76년 은퇴할 때까지 자리를 맡았다. 

하버드대 응용과학대 학장을 지내면서 과학기술과 행정의 결합을 시도한 하비 브룩스 교수. [사진 위키피디아]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브룩스 교수는 과학기술과 국가정책을 접목한 개척자였다. 국가과학자문위원회 위원으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53~61년 재임), 케네디(61~63년 재임), 린든 존슨(63~69년 재임)의 세 대통령을 모시며 미국 과학기술 정책의 토대를 다졌다. 
전공인 물리학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아 반도체 이론과 금속의 띠 구조론 등 기초 분야에서 상당한 과학적 업적을 쌓았다. 학생 지도와 수업도 잘했다. 브룩스 교수는 재기 넘치는 물리학 강의로 하버드대의 전설로 남았다. 제자 중 5명이 노벨상을 받았는데 모두 놀라운 아이디어가 넘치는 브룩스 교수의 강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하버드대 응용과학대 학장을 지내면서 과학기술과 행정의 결합을 시도한 하비 브룩스 교수. [사진 하바드대]

브룩스의 사례를 보면 교육은 지식 전수를 넘어 학생이 영감이나 감동을 주는 학자나 멘토를 만나 새로운 학문적 경지와 인격을 열어가는 여정이다. 오늘날 한국 교육은 지식 전수와 시험 준비가 중심이라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이 진정한 초일류 사회와 세계를 이끄는 지도 국가가 되려면 스승과 제자들의 창조적 탐구 정신이 듬뿍 쌓이고 인격함양이 중심이 되는 참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