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경쟁관계 일본인 팀장, 나를 선뜻 MIT 교수로 추천

중앙일보

입력 2018.11.02 01:00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세계 최고 공대로 평가 받는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이온가속기 실험을 하는 장면. [사진 MIT]

미국 프린스턴 플라스마 물리 연구소(PPPL)에서 핵융합 실험에 몰두하던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초청을 받았다. 매사추세츠 공대(MIT) 핵공학과의 핵융합 연구 책임자인 데이비드 로즈(1922~85년) 교수와 함께 일할 기회였다. 로즈 교수는 연구실을 활성화할 젊은 교수를 찾았는데, PPPL에 있던 그의 제자 요시카와 쇼이치 박사가 나를 추천했다. 요시카와가 나를 찾아와 “MIT 연구 교수로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을 때 솔직히 놀랐지만, 경쟁 과정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 2년간의 PPPL 연구는 나의 ‘박사후 연구과정’이 됐다.  

세계 최고 공대로 평가 받는 매사추세츠 공대(MIT) 전경. [사진 MIT]

 
핵융합 연구의 지도자로 불렸던 로즈 교수의 연구실을 맡아 ‘플라스마 난류(Plasma Turbulence) 연구’라는 분야를 개척하자는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플라스마 난류는 핵융합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려면 고온의 플라스마를 자기장을 이용해 가둬야 한다. 이때 플라스마 중심부는 섭씨 1억 도지만 가장자리는 1000도에 불과해 전체가 불안정하다. 핵융합을 위해선 불안정 상태를 유지해야 하지만 플라스마는 안정 상태가 되고자 난류를 일으킨다. 난류 억제는 핵융합 효율을 높이는 열쇠다.  
 
로즈 교수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42~45년 포병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종전 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에서 공업 물리학을 전공했다. 50년 MIT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벨연구소에서 일하다 58년 MIT에 합류했다. 더구나 MIT는 응용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대학이 아닌가. 이런 MIT의 교수로서 로즈 박사와 함께 연구·교육 경험을 쌓으면 훗날 조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제안을 흔쾌히 승낙하고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근처 케임브리지로 향했다. MIT와 하버드대가 함께 있는 도시다.  

세계 최고 공대로 평가 받는 매사추세츠 공대(MIT) 전경. [사진 MIT]

 
사실 내가 MIT로 향한 배경에는 또 다른 공부 욕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다닐 때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박사과정에 원서를 내고 입학허가서를 받았다. 하지만 장학금을 얻지 못해 단념하고 미시간주립대 장학생으로 물리학을 공부하러 떠났다. MIT 교수로 일하다 보면 근처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에서 공부할 기회도 올 것 같았다. 세계적인 공공정책 대학원인 이 학교는 66년 명칭을 존 F. 케네디(1917~63년)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하버드 케네디 스쿨’로 바꿨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575)
<27>프린스턴에서 MIT로
프린스턴 핵융합 경험으로 MIT행
핵융합 난제 ‘플라스마 난류’ 연구
MIT 같은 도시에 있는 하버드서
행정대학원 강의 듣겠다는 꿈도
안락함 대신 도전하는 삶 선택해
비전 있는 삶이지만 가족엔 미안

당시 나는 이미 세 아이의 아빠였다. 남플로리다대로 돌아가면 부교수 자리에 연봉도 MIT의 2배 이상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MIT 교수 경험과 하버드 행정대학원 수강이라는 기대감 속에 케임브리지로 간 것은 가족을 고려하지 않은 자기중심적 결정일 수 있다. 그런데도 나를 따라준 아내에게 지금도 감사하고 아이들에게는 미안함을 느낀다.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큰 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김법린 초대 원자력 원장의 충고는 항상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