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25분가량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의견을 나눈 뒤 본관에서 본격적인 대화를 나눴다. 북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한·미 핵심 인사가 두 시간가량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지만 네 문장짜리 서면 브리핑이 전부였다.
어제 정의용·조명균 잇따라 면담
“한국, 미국과 보조 맞추란 뜻” 분석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비건 대표가 방한한 건 (최근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한국의 입장을 다각도로 듣겠다는 입장이었다”며 “다양한 당국자로부터 한국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듣고, 우리 입장도 전달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건 대표의 방한 목적이 단순한 한국 정부의 의견 청취 이상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선 비건 대표가 정 실장에 앞서 만난 조 장관과의 모두 발언에 최근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미국의 속내, 즉 속도조절 요구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남북관계가 북·미 관계를 앞서 간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를 통한 대북 압박에 주력하고 있는데 남북이 정상회담과 고위급 회담, 각종 실무회담을 통해 경협에 속도를 내려는 조짐이 마뜩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조 장관과 만나 “우리(한·미)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 같은 것(same thing)을 원하고 있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비핵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부분에 있어 우리가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많은 사안이 있고, 통일부와의 협력을 고대한다”며 “모든 것은 한·미 간의 공고한(close)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가 속도조절이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파트너십’을 강조한 게 대북 정책에 있어 한·미 공조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직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는 “비건 대표가 ‘북·미 회담을 위해 한국이 도와 달라’는 요청을 위해 방한했겠느냐”며 “그가 한국을 찾은 것과 파트너십을 강조한 건 미국이 한국의 정책에 맞추겠다는 뜻보다는 한국이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의미로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용수·위문희 기자 nky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