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엄혹한 일자리 상황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약에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최근 공기업에서 터진 채용 비리는 이런 기대를 부수고 정부 불신을 부채질했다. 혈세를 부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친인척의 정규직화 또는 친인척의 비정규직 제로로 변질해 ‘일자리 도둑’ ‘혈세 도둑’이라는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비리가 고용 참사 상황에서 벌어져 국민 상실감은 더욱 크다
야당의 고용세습 국정조사 요구에
정부·여당은 시간 끌기 해선 안돼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전수조사해
결과 공개하고 엄한 책임 물어야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의 무기계약 폭은 더 커졌다.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한술 더 떠 무기계약마저도 정규직화하는 정책을 취했다. 비정규직→무기계약직 ‘국도’가 어느 날 갑자기 톨게이트 없는 비정규직→무기계약직→정규직의 ‘고용 고속도로’로 바뀌었다.
공기업 내부에 친인척 연줄을 가진 사람은 이 정보를 미리 빼내 비정규직으로 승선해 정규직으로 변신하는 고용세습의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이러한 채용 비리는 서울교통공사에 이어 인천교통공사·한국가스공사·한전KPS 등으로 퍼져 그 뿌리가 어디까지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를 두고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태산이 떠나갈 듯이 요동하게 하더니 뛰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뿐이었다는 뜻)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쥐 한 마리라도 그 문제를 유발한 공기업은 국민에게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번 사건에는 배임과 업무 방해, 직업안정법 등 법 위반이 명백한 유형과, 법적 다툼 소지가 있지만 반사회적·반도덕적 유형이 병존한다. 비리 행위로 탈락한 차순위자가 행정소송이나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도 아니고, 소송 결과 손해배상을 넘어서 채용 청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법 집행의 한계 때문에 반사회적 유형에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된다.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전수조사해 그 결과를 공개하고, 책임자에게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에 이어 정의당까지 고용세습 의혹에 대해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이 시간 끌기를 해서는 안 된다. 조사 결과에 따라 재발 방지를 위해 공기업 채용 기준과 절차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사건에 관계된 공기업 노조도 적극적으로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 이들은 노동기본권 등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어야 한다고 투쟁하면서, 선진국 노조처럼 비리 방지를 위한 투명 절차 및 규정, 감독과 징계 등 자기 절제 관행은 구축하지 않고 있다. 대기업 노조가 단체교섭에서 따냈던 퇴직 조합원 자녀의 우선 채용이나 특별 채용 등 고용세습 조항은 단체협약에서 지워야 한다고 지난 10년간 언론이 지적했음에도 대물림 철밥통이 고쳐지지 않은 사업장이 적지 않다. 이 지경에서 어떻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말할 수 있을까?
채용 비리가 발생한 근본 원인은 정부가 추진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명분에 매몰된 채 진행됐기 때문이다. 공기업에 입사만 하면 생산성이 낮아도 해고 위험 없는 ‘신이 내린 직장’에 진입하기 때문에 채용 비리의 온상이 되기 쉽다. 직무등급제·고용유연성 등 성과주의 정착을 위한 공공부문 노동 개혁 없이는 채용 비리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공기업 노조가 노동 개혁에 반대한다면 노동시장 카스트 계급의 최상층부(브라만)를 차지하는 귀족 노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고용노동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