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야구노트] 잘 던진 류현진, 교체 타이밍 아쉬운 로버츠

중앙일보

입력 2018.10.2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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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리즈에 처음으로 선발 등판한 류현진은 쌀쌀한 날씨 속에도 잘 던졌다. 그러나 2-1로 앞선 5회 말 아웃카운트 한 개를 잡지 못한 게 아쉬웠다. 5회말 볼넷을 내준 뒤 고개를 숙인 류현진. [AFP=연합뉴스]

시속 143㎞의 커터.  
 
류현진(31·LA 다저스)이 2-1로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5회 말, 2아웃 볼카운트 1-2에서 보스턴 레드삭스 9번 타자 크리스티안 바스케스가 우전안타를 때렸다. 이 공을 던지기 직전 류현진은 투수판에서 발을 떼고 심호흡을 했다. 그와 포수 오스틴 반스의 계산이 달랐다.

월드시리즈 2차전
다저스 2-4로 져, 적지서 2연패
류현진 5회 2사 만루서 강판
현지 언론 로버츠 감독 결정 비난
내일 오전 9시 LA서 3차전

앞서 3회 말 류현진은 바스케스를 3구 삼진(커터-커터-속구)으로 쉽게 잡았다. 류현진의 속구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는데, 두 번째 대결에서 커터를 결정구로 던졌다가 안타를 맞았다. 경기 내내 집중력을 잃지 않았던 류현진이 방심한 순간이었다.
 
시속 148㎞의 속구.  
 
비교적 쉬운 타자로부터 기습을 당한 류현진은 1번 타자 무키 베츠에게 안타를 맞고 2사 1, 2루에 몰렸다. 2번 타자 앤드류 베닌텐디를 맞아 풀카운트에서 던진 패스트볼이 한 번 튀어 뒤로 흘렀다. 제구력이 뛰어난 류현진한테선 거의 볼 수 없는 피칭이었다. 더구나 변화구도 아닌 빠른 공이 빠졌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2사 만루 상황보다 류현진이 던진 마지막 공을 보고 우려했다. 투구 수는 69개였으나, 류현진의 힘이 떨어진 거로 판단했다. 라이언 매드슨으로 투수를 교체했다. 매드슨은 밀어내기 볼넷과 2타점 적시타를 내줬다.
 

한국인 최초 월드시리즈 선발투수 류현진. 4회까지 1실점으로 역투했다. [USA 투데이=연합뉴스]

결국 다저스는 미국 보스턴 펜웨이파크에서 25일 열린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WS·7전4승제) 2차전에서 2-4로 역전패했다. 한국인 첫 WS 선발투수 류현진은 ‘꿈의 무대’에서 승리를 잡을 기회를 눈앞에서 날렸다.
 
바스케스든, 베닌텐디든, 스트라이크 딱 하나만 잡았다면 어땠을까. 로버츠 감독이 매드슨이 아닌 다른 투수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5회 안타 3개 중 1개 만이라도 야수 정면으로 갔다면 어땠을까. 결과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도, 승부도, 가정법은 소용없다지만, 투구 내용보다 너무도 좋지 않은 결과(4와 3분의 2이닝 4실점 패전)를 받아든 류현진이다.
 
언제나처럼 류현진은 스스로를 탓했다. MLB닷컴 인터뷰에서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이닝을 끝낼 수 있는 기회가 확실히 있었다. 제구가 잘됐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보면 바스케스에게 던진 커터를 가장 아쉬워하는 느낌이다.
 
승리를 따내지 못했지만, 류현진은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증명했다. 올해 MLB 최다승(108승54패) 구단 보스턴을 맞아 매우 안정적으로 던졌다. 최고 시속 150㎞(평균 시속 145㎞)짜리 속구가 타자 무릎 높이로 계속 파고들었다. 속구(30개) 비율이 평소보다 높았고, 커터(17개)·커브(18개)·체인지업(3개)·슬라이더(1개)를 잘 섞었다. 보스턴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 5경기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강한 마운드를 상대로 29점을 뽑아낸 강타선이다. 류현진은 그런 상대를 예상보다 잘 다뤘다. 다저스 1차전 선발 클레이턴 커쇼(4이닝 7피안타 5실점)보다 나았다.
 
비난의 화살은 로버츠 감독으로 향했다. CBS스포츠는 ‘로버츠 감독이 WS에서 오판을 거듭했다. 5회 말 결정적 상황에서 매드슨을 믿어야 했나’라며 비판했다. 매드슨은 1차전 5회 말 무사 1, 2루에서 커쇼가 내보낸 주자를 모두 홈에 들여보냈다. 2차전 당시 펜웨이파크는 섭씨 8도(체감기온 3도)로 쌀쌀했다. 경기 후 매드슨도 “두 번째 타자(J D 마르티네스)를 상대할 때야 몸이 풀렸다”고 말했다.
 
CBS스포츠는 보스턴 마르티네스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은 것도 벤치의 실책으로 꼽았다. 우익수 야시엘 푸이그가 너무 깊은 곳(홈플레이트에서 97.2m)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보스턴 홈 경기 마르티네스 타석 때의 우익수 평균 수비 위치(90m)와 큰 차이다. CBS스포츠는 ‘평범한 플라이가 적시타로 변했다. 9회 말도 아닌데 외야진이 지나치게 물러났다. 앞서 바스케스의 안타도 정상 수비라면 잡을 수 있었다’고 날을 세웠다.
 
승부의 추는 홈 1, 2차전을 모두 이긴 보스턴 쪽으로 확 기울었다. 이날 등판이 올해 류현진의 마지막 모습일 수 있다. 사타구니 부상으로 3개월 넘게 쉬었던 류현진은 힘든 재활을 거쳤다. 복귀한 이후 정규시즌에 7승3패, 평균자책점 1.97을 기록했고, ‘빅게임 피처’로 불리며 포스트시즌 3경기에 등판했다.
 
류현진은 시즌 직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된다. 왼쪽 어깨 수술 이력이 있어도 시장가치는 현재(6년 총액 3600만 달러·410억원)보다 크게 뛸 전망이다.  
 
지난해 류현진을 ‘5선발 후보’로 밀어냈던 다저스는 에이스급으로 돌아온 그를 잡고 싶을 것이다. 선발진 보강이 필요한 다른 팀도 ‘WS 2선발’을 탐낼 것이다. 마지막 공 하나가 아쉬웠지만, 류현진의 한 시즌은 충분히 값졌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