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부터 잠적하고픈
현대인에게 대리 만족·체험 선사
주인공은 영웅 vs. 범죄자
독자마다 의견 팽팽하게 대립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은둔자도 아니었다"고 폄하
나라로서 우리나라는 이제 은둔과는 아주 거리가 먼, 세계 모든 나라와 두루두루 잘 지내는 생동감 넘치는 글로벌 국가가 됐다.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어딘가로 멀리멀리 떠나고픈, 은둔자가 되고픈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크리스토퍼 나이트(Christopher Knight)는 똑똑한 청년이다. 독서광이라 아는 게 많다. 세상을 보는 혜안이 ‘아마추어 철학자’ 정도는 된다.
상당히 까칠한 성격인 크리스토퍼는 마침내 핀클을 자신의 전기 작가로 인정하며 가능하면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전기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궁금한 게 많아 저자 마이클 핀클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우리는 베스트프렌드(best friends)가 되지는 못했다. 그는 진정한 은둔자다. 나와 친구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가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 중 하나는 ‘나를 좀 내버려 둬(Leave me alone)’였다. 그와 연락하고 있지 않다. 내가 알기로 그는 아직 메인 주에 살고 있다. 숲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어머니의 집을 떠났다. 메인 주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굉장히 중시한다. 그래서 다행히 호기심 때문에 그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다. 책을 보냈으나 답장이 없다.”
- 그가 숲속 체험을 자서전으로 출간했다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돼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졌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나도 이 문제를 생각해봤다. 크리스토퍼는 굉장히 똑똑하다. 독서가다. 그가 내게 보낸 편지를 보면 글을 정말 잘 쓴다. 직접 책을 썼다면 놀라운 책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출간 생각이 있었다면 숲속에서 그는 일기를 썼을 것이다.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크리스토퍼는 《숲속의 생활(월든)》을 쓴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를 깔봤다. 숲속 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책을 썼다는 것이다.”
- 크리스토퍼는 끝까지 자신이 은둔을 선택한 이유를 속 시원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 내가 이 책에 매달린 이유다. 똑똑한 젊은이가 세상을 등진 이유가 뭘까.'범죄를 저지르고 숨은 것일까.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 때문이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가 내게 준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심오했다. 그는 숲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한 번도 사람들 사이에서 편안한 적이 없었다. 그가 숲으로 간 이유는, 숲이 그를 마치 자석처럼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내적인 욕구가 그를 숲으로 이끌었다. 그는 홀로 있는 게 정말 좋았다.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이건, 비행기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이건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미친 듯이 빨리 돌아가는 숨 가쁜 삶을 산다. 나는 한국에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 또한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압박에 짓눌리며 산다는 것을 안다. 크리스토퍼는 숲속에서 행복했다.”
- 크리스토퍼는 은둔을 꿈꾸는 모든 이들을 대표하는가? 아니면 그는 별종의 아웃라이어(outlier)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흥미롭게도 크리스토퍼의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은 반응이 제각각이다. 어떤 이들은 ‘나 또한 지극히 내성적인 사람이다. 나도 그처럼 떠나고 싶다. 내게 크리스토퍼는 영웅이다’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그는 도둑놈이다. 범법자다. 게으른 놈이다.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한다. 나는 그를 혐오한다’라고 말한다. 혐오의 대상일 수도 있지만,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크리스토퍼는 그들이 영원히 이루지 못할 꿈을 실제로 실천한 영웅이다.”
- 크리스토퍼의 27년 숲속 생활에서 어떤 교훈을 추출하는 게 가능할까.
“우리가 모두 크리스토퍼처럼 27년간 숲속에서 은둔자 생활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독자마다 다른 교훈을 얻겠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추출한 결론은 이것이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예컨대 15분을 크리스토퍼처럼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격리하자. 명상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핸드폰을 끄자. 어려운 책을 읽자는 말도 아니다. 강인한 사람이 되기 위해 운동을 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고요함(calmness) 속, 고독으로 들어가 우리의 삶을 한 번 관찰해보자. 우리는 글자 그대로 현대 문명 사회에서 우리 자신을 죽이고 있다. 나 또한 아내와 세 명의 자식과 직업이 있기에 하루하루 너무 바쁘다. 크리스토퍼는 내게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롤모델을 선사했다. 하루 15분 은둔 생활.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스트레스 퇴치법이다.”
《숲속의 은둔자》의 저자는 마이클 핀클은 우리나라가 100여년 전만 해도 ‘고요한 아침의 나라(Land of Morning Calm)’였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줬다. 그런데 그 큰 고요함은 어디로 간 것일까.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