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변경에서는 지금
지난 20일 낮 평안북도 삭주군 청수노동자구 앞 압록강변. 중국 측 유람선을 빌려 한 시간 남짓 근접 관찰한 북녘땅에는 가을빛이 완연했다. 단풍이 울긋불긋한 산 중턱에는 염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한 노인은 강변에서 그물을 던져 고기잡이에 한창이었다. 옥수수를 수확하던 주민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환담을 하고 있었다. 초소 2층 망루에 걸터앉아 강 쪽을 응시하던 국경수비대 소속 북한 경비병은 답사단 일행이 손을 흔들자 머리 위로 양손을 올려 하트 모양의 인사로 화답했다. 건물 수리를 하던 남루한 차림의 인부도 같은 포즈를 취하며 반가움을 표했다. 불과 일 년 전 한국 관광객을 태운 중국 배라는 걸 알아차리고 나서는 굳은 표정으로 외면하거나 마지못해 손을 흔들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재가동된 화학공장 열악한 시설
"마굿간 같다” 김정은 질책 실감
중강진에 유럽 연상할 주택 세워
"스위스 유학한 김정은 취향 반영”
북한 식당 찾는 우리 관광객 늘어
대북제재 차원 ‘금지령’ 유명무실
강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자 길이 900m에 낙차가 106m에 이르는 수풍댐의 위용이 앞으로 가로막고 나섰다. 일제 강점기인 1943년 완공돼 해방 직후엔 남한 전력의 92%를 공급하던 동양 최대의 수력발전소였다. 북한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움직임에 불만을 품고 1948년 5.14 대남 송전중단 조치를 취했고, 서울을 비롯한 남한 지역은 암흑천지로 변하기도 했다. 수풍댐은 현재는 북한과 중국이 공동 관리하고 생산된 전력의 절반을 중국이 가져간다. 하지만 시설 노후로 예전의 영화는 잃어버린듯했다. 전력·에너지 전문가인 남호기 SK가스 고문은 “수풍댐(60만㎾)을 포함해 북한의 발전용량은 700만㎾ 수준인데 우리는 1억㎾ 규모”라면서 “전력이 곧 경제력인 상황에 비춰보면 북한이 처한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실상을 감추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과 강을 맞대고 있는 북한 지역 몇몇 곳에 체제 선전용으로 보이는 건물을 짓거나 아예 마을을 새로 조성한 것이다. 중국 창바이(長白)시와 마주한 북한 혜산에는 강을 따라 아파트 수십 동이 세워졌다. 하지만 21일 밤 조망해 본 혜산 쪽 건물은 희미한 백열등이 켜진 몇몇 집을 제외하고는 암흑에 가까운 상태였다. 화려한 조명 속에서 공원에 모인 주민들이 함께 춤을 추거나 운동을 하는 중국 쪽 모습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중국 린장(臨江)과 마주한 북한 중강진에는 아예 수백 가구 규모의 주택을 새로 지은 마을이 눈길을 끌었다. 김정일(2011년 사망) 국방위원장도 수차례 방문한 ‘3월5일청년광산’ 인접 지역에 들어선 빌라형 주택을 놓고 “스위스 유학을 한 김정은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란 말이 나온다. 산 중턱에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 만세’라는 대형 선전구호가 세워져 있었지만 마을에는 인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적해 보였다.
탈북자 숫자는 김정은 집권 이후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북한의 경제 사정이 나아진 때문이란 분석이 있지만 다른 진단도 있다. 북한 당국의 탈북자 단속이 강화된 데 따른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북·중 접경지역 가운데 강폭이 좁아 탈북에 주로 이용됐던 지점 대부분을 철조망으로 둘러쳤다. 특히 곳곳에 촘촘히 세워진 CC-TV는 탈북을 엄두 내기 어렵게 만들었고, 탈북자를 추적·단속하는 데도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여성 탈북자의 비중이 80%에 육박하면서 인신매매가 늘자 중국 당국이 ‘여자와 아이를 판매하지 말 것’이란 경고문을 세우기도 했다. 답사단과 동행한 강동완 부산하나센터장(동아대 교수)은 “평양 특권층을 제외한 일반 주민 삶을 내팽개친 북한 당국이 만들어낸 가슴 아픈 현실”이라고 말했다.
◆NK비즈포럼
대북 진출을 고려 중이거나 북한 경제, 남북경협에 관심 있는 기업체 CEO와 고위 임원, 로펌·회계법인 관계자 등 각 분야 인사가 참여하는 중앙일보의 북한·통일 포럼. 지난 9월부터 38명의 1기 회원이 전문가 강좌와 현장 답사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 초 2기 회원을 모집할 예정이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