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어느 정부나 금리를 낮추고 돈을 넉넉히 풀기 바라지만, 중앙은행은 반대로 보곤 한다. 우리도 자주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180도 바뀌었다. 경기침체가 심각하다며 연거푸 추경을 짜던 정부의 각료가 금리 인상을, 한은이 동결론을 편다. 이 구도, 너무도 생소하고 어색하지 않나. 정부의 금융완화 압력에 맞서온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보면 뭐라 하겠나.
각료의 금리인상 압박은 드문 일
한은이 ‘집값 주범’ 풍설 자초한 셈
유능하고 독립적 중앙은행 있어야
장기적 경제안정 기대 가능한 법
사회계약까지 갈 길 아직 먼데
한은은 그럴 의지와 역량 갖췄나
압력을 가하는 정부를 무지막지한 가해자로, 압박받는 한은을 청순가련한 피해자로 보기만 할 수도 없다. 어느 정부든 유권자, 넓게는 사회로부터 다양한 요구와 압력을 받는다. 특히 경제적 불만이나 좌절은 지지율과 선거라는 파급경로를 타고 한은에까지 밀려든다. 그렇다면 압력의 진원지를 조기에 파악해 해소할 방법을 선제적으로 강구해볼 법도 하지만, 그건 또 영공침범에 해당한다. 한은이 경제의 ‘경’자 붙은 데 다 끼어들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여기저기서 압력은 다 받는다. 그 난처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며칠 전 『중앙은행』이라는 회고록을 낸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전 일본은행 총재는 이런 게 쌓여 ‘시대의 공기’를 형성한다고 했다. 옳든 그르든 특정한 공기가 한 시대를 지배하면, 다른 공기를 들이마실 수 없다. 그런 공기의 변화를 한은 역시 민감하게 살펴야 한다.
시라카와는 또 정책에서 이론의 비중은 4분의 1에서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고미야 류타로(小宮隆太郎) 전 도쿄대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공감한다”고 했다. 통화관리는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고도 했다. 정치·사회적 차원의 의사라는 것이다. 종합적 판단과 센스의 차원일 수도 있다. 그래도 전문가의 존재는 중요하다. 그 판단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금리 조정의 정치화·사회화를 최대한 피하려는 노력은 중앙은행의 중요한 책무다.
이처럼 유능하고, 믿을 만하고, 독립적인 중앙은행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 중앙은행의 노력만으론 부족하다. 정부·정치권이 필요성을 절감하고 움직여야 한다. 근본적으론 사회적 컨센서스가 형성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게 사회계약이다. 하지만 요즘 한은을 둘러싼 험악한 분위기를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성태 전 한은 총재는 2014년 3월 중앙SUNDAY 인터뷰에서 “한은의 제1 목표는 경제 안정”이라 했다. 경제가 불안해졌는지 몇 년 지난 지금 한은에 쏠리는 시선은 더 싸늘해졌고, 한은으로 향하는 압력은 더 세졌다. 그동안 한은은 뭘 했나. 도대체 뭐가 문제길래 아직도 만만하게 보이나. 이주열 총재는 부총재 시절 좌표에 강한 총재와 파동에 강한 총재 밑에서 각각 일해 봤다. 어떻게 해야 방향성을 지키면서도 격류를 피해갈지 고민할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답을 찾았을까. 흔히 중앙은행의 역할을 타 직업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마에스트로, 파일럿, 의사, 약사, 호민관… 이주열호 한은은 어떤 중앙은행이고 싶나.
남윤호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