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문제 중 예상문제 50개에 포함된 4개의 답안을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써나갔다. 다른 한 문제도 비교적 흡족하게 답안을 써서 제출했다. 목표였던 C 학점은 문제없고 잘하면 B 학점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장을 나오면서 말을 나눴던 필리핀 출신 동료 학생은 “문제가 어렵지 않아 답안을 술술 적어냈다”며 유독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땐 그런 여유가 부러웠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 (7564)
<16>스푸트니크 충격의 후폭풍
유학생 혹독한 자격시험 보게 한 이유
57년 소련, 세계 최초 인공위성 발사
미 '세계 1위 과학기술' 자존심 손상
만회 위해 나사 창립, 과학 투자 확대
수학·과학 교육 혁신…해외 인재 유치
과학기술자 철저히 실력에 따라 대접
“미스터 정. C 학점은 확보했으니 이젠 안심해도 됩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힘들여 공부하고 6문제 중 5문제를 제대로 풀었다고 믿었는데 겨우 낙제를 면한 C 학점이라니…. 세계의 벽은 이렇게도 높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자괴감과 실망감에 가슴이 미어졌다. 지도교수는 자신감이 넘쳤던 그 필리핀 학생을 지목해 “시험을 잘 치렀다”고 칭찬까지 했다. 이어 석사 과정을 시작하게 될 B학점 학생 명단을 발표했다. 거기에 그 필리핀 학생은 포함됐지만 나는 없었다. 속이 쓰려 왔다. 그런데 발표 맨 마지막에 지도교수가 나를 부르더니 “어떤 식으로 공부했느냐”고 물었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20권의 책에서 50개의 예상문제를 뽑아 공부했는데 그 가운데 4개가 똑같이 나오고 1개는 비슷하게 출제돼 비교적 쉽게 답안지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겨우 C 학점이라고 해서 충격이 큽니다.”
그러자 지도교수가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어깨를 끌어안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미스터 정. 당신이 이번 시험 수석입니다. 학점은 A입니다. 미시간 주립대는 당신 같이 뛰어난 학생이 들어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꿈과 같은 순간이었다. 그동안의 긴장과 피로가 눈처럼 녹았다. 그 순간 ‘이건 나의 능력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나를 돕고 있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잠시 눈을 감고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러면서 ‘절대로 교만해선 안 된다’는 다짐을 하고 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