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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헤일리와 라이언의 물러날 권리

중앙일보

입력 2018.10.1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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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니키 헤일리 미국 유엔 대사의 지난 9일 사임 발표는 트럼프 시대 인사풍경에선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트럼프 옆자리에 앉아 기자들과 한 대담 형식의 발표였다. “2020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대통령의 재선을 돕겠다”며 덕담도 주고받았다. 상관 격인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 대북 외교 해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가 “시간 낭비 말라”는 면박만 받고 새벽 댓바람에 트윗 해고를 당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임기 없는 유엔 대사직을 굳이 2년 임기제로 하겠다며 실제 사임 시점보다 두 달여 앞서 발표한 것부터 이례적이다. 민주당에 하원을 뺏길 위기인 중간선거를 딱 4주 앞둔 날이다. 이 때문에 실세 이방카에게 자리를 비워준 것이라는 등 각종 억측을 낳았다. 대통령이 선거 직후 눈엣가시인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을 해임하고, 충성파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을 임명한 뒤 헤일리가 잔여 임기 의원이 되는 돌려막기 인사를 대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것도 대통령이나 그레이엄 등 당사자들이 부인해 깊은 배경은 두고 봐야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헤일리 본인이 한 주 전 대통령에게 작성한 사퇴서를 보면 할 일을 다 하고 돌아가겠다는 당당한 사퇴였다. 10월 3일자 사표에 “임기제의 강력한 지지자로서, 나는 공직의 순환이 공공의 이익이 될 것으로 오랫동안 믿어 왔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원, 주지사에 이어 유엔 대사직까지 14년 연속 공직에 머물렀다. 기업인 출신인 당신은 공직에서 민간 부문으로 돌아가는 것이 ‘퇴진(step down)’이 아니라 ‘승진(step up)’이란 내 생각을 이해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적었다.
 
미 의회와 공화당 최고지도자로서 일찌감치 정계 은퇴를 선언한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비슷하다. “세 아이가 나를 더는 ‘주말 아빠’로 기억하게 둘 수 없다”면서 10선 의원과 하원의장직을 연말까지의 임기를 끝으로 내려놨다. 처음엔 케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의 의장직 승계 얘기도 나왔지만 의장실에서 숙식하며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 쑥 들어갔다. 1998년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의원이 됐고, 140년 만에 최연소 하원의장이 된 라이언은 헤일리와 함께 공화당의 젊은 지도자로 꼽힌다. 지난 8일 내셔널프레스클럽 행사에서 정치를 완전히 그만두느냐는 질문에 “절대 아니란 말은 절대 해선 안 된다.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며 찬찬히 생각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인사는 우리와 닮았고 사달이 끊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공직을 선거 승리의 전리품 취급하는 것을 막기 어려워서다. 그래서 두 사람이 보인 공직자의 사퇴권이 더 눈에 들어왔다.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