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가에서는 ‘승인’이라는 단어를 주목했다. 동등한 동맹 관계에서 승인이란 표현이 나오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 전직 외교관은 “수십 년 외교관 생활을 했지만 미국 대통령이 이런 단어를 쓰는 것은 처음 봤다. 대체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빛 샐 틈 없다던 한·미 공조는 어떻게 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반면에 청와대는 이를 한·미 간 협의를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모든 사안은 한·미 사이에 공감과 협의가 있는 가운데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다.
강경화 발언에 직접 맞받아쳐
조명균 “검토한 적 없다” 진화
외교가 “동맹국에 결례될 표현”
청와대선 “협의 강조한 것” 해석
트럼프, 폼페이오 이어 불만 표시
조명균 “아무것도 못해는 부적절”
“미국, 제재 통해 북 끌어냈다 판단
한·미 제재 공조 안되면 협상 악재”
강경화 장관도 전날 해제 검토 발언 직후 세 차례에 걸쳐 말을 바꿨고, 마지막에는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사과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11일 “어제 주한 미 대사관을 통해 국감 내용 중 필요한 내용(강 장관 발언)을 정리해 설명했고, 그게 본국에도 보고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거의 실시간으로 필요한 내용을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워싱턴 현지시간 10일 낮 12시12분, 한국 시간으로 11일 오전 1시12분에 나왔다. 정부가 주한 미 대사관을 통해 5·24 조치 해제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는데도 미국 대통령의 승인 불가 발언이 나온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례없는 표현을 써서 파장을 불렀지만 동시에 그만큼 대북제재에 대한 한국의 독자행동은 받아들일 수 없음을 공개적으로 알린 게 됐다.
“우리 승인없이 아무것도 못해” 3번 반복, 한국 대북과속 경고
미국 대통령과 외교 수장이 연이어 한·미 동맹에서 ‘이례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일관되게 대북제재와 압박을 고수하는데 한국이 제재 완화 움직임을 보이며 과속하는 경향을 보이자 이 같은 반응들이 나왔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취임한 뒤 강력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를 도출하고 중국을 압박해 제재를 충실히 이행하게 했기 때문에 북한이 비핵화 결단을 내렸다고 자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한·미 간엔 유독 대북제재 문제를 놓고 이견을 표출해 왔다. 남북 철도 연결 사업, 개성 연락사무소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정부가 속도를 낼 때마다 대북 물자 반입 등 제재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정부는 ‘여건이 조성되면’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9·19 평양 공동선언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조속히 재개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특히 판문점 선언에 연내 종전선언을 명시하며 미국 설득에 매달리는 듯한 모습을 내비치기도 했다. 최근 워싱턴을 다녀온 한 전문가는 “비핵화의 의미 있는 초기 조치 없이 종전선언을 하는 데 대한 워싱턴 조야의 거부감이 꽤 크다. 한국이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니 해줘버리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5·24 조치를 포함해 대북제재에 대해서는 한·미 간 발을 맞춰야 하는데, 한국에서 이에 맞지 않는 일이 생기니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거친 반응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강 장관의 10일 5·24 조치 해제 검토 발언이 지난해 10월 이른바 ‘사드 3불(不) 합의 발언’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강 장관은 당시 정부가 중국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놓고 했던 3불 합의(▶미국 MD 체제에 편입하지 않으며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를 국정감사장에서 발표했다. 이때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정감사 질의에 답하는 식으로 3불을 확인했다. 이번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질의에 대답하는 식으로 검토 발언을 했다. 단, 이번엔 발언을 번복한 데서 차이가 있다.
유지혜·권유진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