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7시간, 계약서도 없이?…'개살구' 드라마 강국의 허울

중앙일보

입력 2018.10.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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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촬영 삽화 일러스트 김회룡

우리나라에서 1년간 방송되는 미니시리즈는 약 100여편이다. 여기에 웹드라마와 연속극까지 더 하면 그 수는 배로 늘어난다. 물량 면에서 단연 대한민국은 드라마 강국이다.
 
하지만 이 허울 좋은 드라마 강국을 지탱하고 있는 건 폭력적인 업무량과 부당한 대우를 감내하고 있는 수많은 방송 제작 스태프들의 희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하루 20시간 가까이 일하며 '쪽잠'을 잔 뒤 또다시 촬영하는 '디졸브' 촬영을 강행하기도 한다. 계약서 대신 구두 계약을 믿고 일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일주일 70시간 이상 촬영 강행도

[포토]오늘의 탐정, 시청률도 잡을게요

10일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방송스태프들의 제보를 받아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의 촬영일지를 공개했다. 촬영일지에 따르면 여전히 드라마 제작 현장의 장시간 노동은 계속되고 있었다. 추혜선 의원에 따르면 KBS 수목 드라마 '오늘의 탐정'의 경우 1주일간 총 73시간, 하루 평균 18시간씩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 특히 지난달 27일 목요일에는 오전 7시에 촬영을 시작해 다음 날 새벽 3시 30분에 끝나 총 20시간 30분을 촬영했다. JTBC 월화드라마 '뷰티인사이드'의 경우에도 일주일간 약 78시간 촬영을 강행했다.
 
이는 비단 특정 방송사의 문제가 아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설문조사 전문업체 서던포스트에 의뢰해 방송스태프 291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월 이후 스태프들의 일평균 노동시간은 17.7시간이었다. 특히 이들 중 26.8%는 계약서 없이 그저 구두계약을 통해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용역도급 턴키계약이 39.9%로 가장 많았다.


일평균 노동시간 17.7시간, 계약서도 없어
이는 스태프들 개개인이 직접 제작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대신 팀별 감독과 제작사가 세부 항목에 대한 계약 없이 총액만을 계약하는 방식이다. 추혜선 의원은 "용역도급 턴키계약은 노동자인 감독들에게 사용자 책임을 전가하고 스태프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어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는 10%에 불과했다. 개별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이유로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관행(70.6%) ▶제작사의 요구(21.0%)가 가장 많았다. 추 의원은 "사전제작 환경 마련, 쪽대본 폐지 등 실질적인 개선 방안 논의를 위해 현장 스태프를 포함, 제작사와 방송사, 정부 관계부처까지 함께하는 노사정 협의체가 이른 시일 내에 구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