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벤지포르노 엄벌” 정치인들에게 문자폭탄

중앙일보

입력 2018.10.0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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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혜화역 인근 에서 열린 집회에서 진행자가 국회 법사위 소속 의원들의 전화번호를 공개하며 ‘문자총공’을 지시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 마련된 스크린에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상규·금태섭·박지원 의원 등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공개됐다. “편파판결 편파수사 방지, 불법촬영을 비롯한 여성 혐오 범죄 처벌을 강화하도록 법조항을 제정하라”는 문장이 스크린에 떴다. 이 문자는 해당 의원들에게 동시 전송됐다. 일명 ‘문자 총공(문자 총공격)’ 퍼포먼스다. 박지원 의원은 이날 오후 10시쯤 페이스북에 “오후 4시 30분부터 1만5000여개의 문자폭탄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홍대 남성누드모델 몰래카메라(몰카) 사건에 대한 편파수사에 반발하며 집회가 열렸던 혜화역에 또다시 여성들이 모였다. 여성단체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이날 5차 시위에는 걸그룹 카라 출신의 구하라(27)씨를 동영상으로 협박했다는 의혹을 받는 전 남자친구 최모(27)씨를 규탄하고, 남성중심 문화에 항의하는 여성 약 1만5000명(주최 측 주장 6만 명)이 참여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에서 여성 관련법 모니터링을 해보면 통과가 거의 안 되는 등 가시적 정책 변화가 없다”며 “여성이 사회적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면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말 혜화역 시위 1만5000명 참여
여성들, 구하라 전 남자친구 규탄
“여혐범죄 처벌강화법 제정” 문자
남성단체 “27일 맞불집회 열겠다”

특히 이번 집회를 앞두고 발생한 구하라씨의 ‘리벤지포르노(옛 연인이 보복으로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는 것)’ 사건은 여성 참가자들의 분노를 고조시켰다. 구씨는 지난달 13일 남자친구 최씨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최씨를 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그러나 4일 최씨로부터 사생활이 담긴 동영상을 카카오톡으로 전해 받은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협박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최씨 변호사 측은 “추억이니 간직하라는 취지로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여성은 “협박 의도가 없다던 최씨는 동영상을 일부만 편집해 2차례에 걸쳐 전송했다”며 “피해자인 구하라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축되고, 2차 피해까지 받고 있다”라고 분개했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에 따르면, 당사자의 동의로 촬영했더라도 허락 없이 성적 동영상을 유포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동영상을 빌미로 위협을 하면 협박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이번 집회에선 참가자들이 ‘능지처참’ 같은 극단적 메시지가 담긴 피켓을 들었다. 또 “여자는 남자가 그냥 둘 때 가장 안전하다”는 구호를 외치는 등 남성 전체에 대한 적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법률사무소 ‘차이’의 채다은 변호사는 “지금까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성범죄에 대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좋은 일이지만, 이런 극단성은 진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냈을 때 주목받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극단주의 여성 운동에 대한 반발 움직임도 있다. 성범죄에 대한 유죄추정 원칙을 규탄하는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는 오는 27일 혜화역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다.
 
김다영·이태윤·김정연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