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시위 왜 계속되나...구하라 리벤지 포르노로 공격성 강해져

중앙일보

입력 2018.10.07 18:35

수정 2018.10.07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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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여성단체 '불편한 용기'가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주최한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집회에서 진행자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전화번호를 공개하며 '문자총공'을 지시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에 마련된 집회 스크린에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해 여상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송기헌ㆍ오신환ㆍ금태섭ㆍ조응천ㆍ표창원ㆍ박지원 의원 등 법사위 소속 의원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공개됐다. “편파판결 편파수사 방지, 불법촬영을 비롯한 여성 혐오 범죄 처벌을 강화하도록 법조항을 제정하라. 국가는 대한민국 절반인 여성의 분노에 대답하라”는 문장도 스크린 화면에 공개됐다. “일관된 메시지 전달을 위해 해당 문장 이외의 내용은 보내지 않기를 권고드린다”는 설명도 달렸다. 이날 참가자들이 보낸 문자는 해당 의원들에게 동시 전송됐다. ‘문자 총공(문자 총공격)’ 퍼포먼스다. 박지원 의원은 이날 오후 10시쯤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후 4시 30분부터 1만5000여개의 문자폭탄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홍대 남성누드모델 몰래카메라(몰카) 사건에 대한 편파수사에 반발하며 4차례 집회가 열렸던 혜화역에 또다시 여성들이 모였다. 여성단체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이날 시위에는 걸그룹 카라 출신의 구하라(27)씨를 협박한 의혹을 받는 전 남자친구 최모(27)씨를 규탄하고, 남성중심 문화에 항의하려는 여성 약 1만5000명(주최 측 6만 명)이 참여했다. 

6일 오후 혜화역 여성 1만5000여명 결집
국회의원에 문자총공, "능지처참" 구호도
"당당하라 구하라" "전 남친 강력 처벌"
극단적 남성 불신에 우려도 나와

홍대 몰카 사건을 계기로 열려온 여성시위가 소강 국면을 보이다가 다시 커지는 모양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에서 여성 관련(미투 관련) 법 모니터링을 해보면 통과가 거의 안 되는 등 가시적 정책 변화가 없다"며 "여성이 사회적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게 시위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첫 시위의 발단이었던 수사기관의 편파수사 의혹에 대한 반발이 사법부의 편파판결 의혹으로 이어지면서 시위의 동력이 되고 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홍대 몰카 사건은 범인이 초범이고 피해자가 한명인데도 구속됐지만, 남성은 불법촬영 피해자가 200~300명인데도 집행유예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성폭력 특례법의 조항 자체가 남성중심적인 문구로 이뤄져 있고,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도 대부분 남성"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 집회를 앞두고 발생한 구하라씨의 '리벤지포르노(보복으로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는 것)' 사건은 여성 참가자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구씨는 지난달 13일 남자친구 최씨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최씨를 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그러나 지난 5일 최씨로부터 사생활이 담긴 동영상을 메신저로 전해 받은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협박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최씨 변호사 측은 "추억이니 간직하라는 취지로 전달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여성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여성은 "최씨는 동영상을 일부만 편집해 2차례에 걸쳐 전송한 데다, 모 언론사에 동영상과 사진을 제보할 것처럼 메시지를 보냈다"며 "성범죄 피해자인 구하라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축되고, 온라인에서 2차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분개했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에 따르면, 당사자의 동의 없이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유포했을 시에는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동의로 촬영했더라도 허락 없이 동영상을 유포할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및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동영상을 빌미로 협박했을 때는 협박죄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 리벤지 포르노 범죄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성폭력범죄 전문 김재련 변호사는 "불법촬영 영상은 증거를 인멸하기 쉽고 유포 가능성도 언제나 열려 있지만, 수사 과정에서 신속한 압수수색이나 구속수사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피의자 대부분이 '스마트폰 분실했다가 찾았는데 그때 다른 사람이 유포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집회에선 참가자들이 남성 전체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참가자들이 개사해 부른 집회 노래에는 '야동사이트 불법촬영 퍼져갈 적에 남경(남성 경찰)들은 같이 보며 00을 뿌린다'는 등의 극단적인 가사가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극단성은 또다른 반발을 부르고 있다. 성범죄에 대한 유죄추정 원칙을 규탄하는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는 오는 27일 혜화역에서 집회를 예고했다. 불편한 용기 또한 당당위에 맞불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법률사무소 차이의 채다은 변호사는 "지금까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성범죄에 대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좋은 일이지만, 극단적 움직임은 진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냈을 때 묻히게 하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다영·이태윤·김정연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