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0일(현지시간) 베를린에 있는 독일 연방노동조합연맹(DGB) 사무실. DGB소속 잉마르 쿵프만 박사에게 독일의 노조가 파업 찬성률을 조합원 75% 이상으로 정하고 있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대체로 미국은 조합원의 3분의 2(약 66.6%), 한국은 과반만 찬성하면 파업을 시작할 수 있지만, 독일 노조는 좀처럼 파업을 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독일의 노동자들은 큰 불만이 없다. 쿵프만 박사는 "파업이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에 노·사가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가 독일 대다수 기업에 정착해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독일 자동차 산업 경쟁력의 밑바탕엔 선진적인 노·사 문화가 있다. 초등 교육 과정에서부터 '모의 임금단체협상' 실습을 하는 독일 노·사는 합리적 근거를 들어 상대방을 설득하는 훈련이 몸에 배어 있다. 강성 노조의 '묻지마' 연례 파업이나, 재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를 독일에선 보기 어렵다. 경영진 역시 노조를 무조건 적대시하지도 않는다.
“장시간 일하면 생산성 떨어진다”
장기근속은 보장, 회사 안정 꾀해
노동이사제도 노사 협력 창구로
매주 37.9시간 일하는 독일…"오래 일하면 불량률 높아져"
쿵프만 박사는 "노·사 모두 하루 근로자가 8시간 이상을 일하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불량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알고 있다"며 "최근에는 어린 자녀를 키워야 하는 직원은 일정 기간 파트타임으로, 자녀를 키운 뒤에는 다시 풀타임 일할 수 있게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장기근속 보장, 노동자는 고통 분담 동참
한국에선 부작용을 우려하는 노동이사제도 독일 자동차 기업엔 자연스럽게 정착돼 있다. 노동계 대표를 이사회에 파견해 경영진을 감독하도록 하는 이 제도는 1951년, 노동운동가 한스 뵈클러의 제안으로 도입됐다.
독일 노동계는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주주를 대표하는 '경영 이사'의 발언권이 더 크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경영 이사'가 명백히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노동 이사'들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독일 노동계는 노동 이사제가 노·사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을 막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고 본다.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이 이사회에서 심사숙고될 수 있도록 전달하고, 경영진의 요구도 노동자들에게 설득하는 역할을 노동 이사가 맡는다는 것이다.
장 폴 기어츠 한스뵈클러 재단 사회복지 담당은 "2009년 금융위기 직후 독일서도 많은 회사가 문을 닫았지만, 근로자 임금과 노동시간을 줄여 위기를 극복하는 데 노동이사제가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일을 하면 생산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베를린=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