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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프리즘] 이승만과 지방의회

중앙일보

입력 2018.09.28 00:33

수정 2018.09.28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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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현 대전총국장

대전시의회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 단죄에 나섰다. 대전시의회는 최근 ‘반민족·반헌법 행위자 단죄 및 국립현충원 묘소 이장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반민족 행위자의 국립묘지 안장을 막고 국립현충원에 있는 묘를 옮기도록 법을 만들라는 게 요지다. 이는 지난 7월 출범한 대전시의회에서 탄생한 첫 결의안이다. 의원 14명이 발의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대전시의원 22명 가운데 21명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지방의회가 친일 잔재 청산을 정면으로 거론한 것은 왠지 어색하다. 지방의회의 기본 역할인 주민 복리 향상과 지방행정 감시·견제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회라고 해서 친일파 청산 등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자칫 진영과 이념 갈등에 휘말릴 수 있는 문제에 지방의회까지 나서는 게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대전시의회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결의안에서 대전 배재대 캠퍼스에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철거를 요구했다. 독재자 ‘이승만’을 기리는 동상이 십수 년째 서 있고 독재자의 호(우남)를 딴 학교 건물 이름도 있다며 흔적을 지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재대에 이 전 대통령 동상이 자리 잡은 것은 1987년이다. 그해 이 대학 졸업생들이 돈을 모아 동문 선배인 이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세웠다. 배재대의 모태는 1885년 선교사 아펜젤러가 서울 정동에 설립한 배재학당이다. 배재학당 대학부는 일제 강점기 때인 1925년 폐지됐다가 1980년 대전에 캠퍼스를 만들면서 부활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세 때인 1894년 배재학당 영문과에 입학했다. 후배들이 학교를 빛낸 선배의 동상을 건립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 동상은 시민단체 반발 등으로 그동안 2차례 철거와 세워지기를 반복했다. 지난 4월부터는 철거요구가 다시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전시의회까지 나서 남의 사유재산을 놓고 이래라저래라 하고 있다.
 
대전시의회의 행태는 지역 사회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우남동상지키기 자유민주시민본부’는 “독립운동가이자 건국 아버지의 동상을 지키겠다”며 지난 14일 대전시의회에서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결의문을 철회할 때까지 시의회에 항의하기로 했다.
 
현 정부 들어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이념 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방의회까지 이념 과잉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인상을 준다. 대전시의회가 실사구시(實事求是) 자세로 민생현안을 우선 해결하는 데 전념했으면 한다.
 
김방현 대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