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는 지난 5월부터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한국산 차량을 포함한 수입 자동차에 고율 관세(25%) 부과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한 수입 상품에 대통령이 직접 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규정한 일종의 ‘무역장벽’ 법안이다.
미국의 25% 관세 폭탄 저지 총력전
문 대통령 “관세 면제해달라” 요청
트럼프 “검토하라” 백악관에 지시
피해액, 완성차 업체 순익의 70%
관세 부과 땐 부품업체도 치명타
더 큰 문제는 자동차 부품사다. 미국 행정부는 자동차 부품에도 관세(25%) 부과를 검토 중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부품의 70~75%가 관세 부과 대상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납품가 인상이 어려운 상황에서 마진이 적은 한국 부품사에게 관세 부담까지 겹치면 한국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24일(현지시간) 한·미 FTA 개정협정 공식 서명에 앞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자동차 관세를 거론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의 대미 수출 자동차 관세를 면제해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일본·독일·멕시코의 대미 무역 흑자폭이 급격하게 증가한 반면 한국은 지난해 흑자폭 대폭 감소했고, 한국 대미 자동차 수출의 51%를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어서 미국 고용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 관세 면제 가능성 검토를 지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요청에 검토를 지시하면서 국내 자동차업계는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김태년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는 “정상회담 자리에서 자동차 관세 문제가 의제로 거론됐다는 사실에 자동차업계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실제로 한국산 차량에 관세가 면제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미 FTA 재협상 성과를 논의하기는 이르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 1·2위(자동차·자동차부품)에서 피해가 크다는 이유로 FTA 재협상을 요구했었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멕시코의 경우 관세 부과를 피했지만, 할당량(쿼터제)을 적용받았다”며 “마찬가지로 한국이 관세·쿼터 등 다른 방식으로 사실상 자동차 수출에 제약을 받는다면 한·미 FTA 효과는 그만큼 반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정·관·재계 주요 인사는 고율 관세 면제를 위해 ‘합동 작전’을 펼쳤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18~19일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 등에게 관세 면제를 요청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도 미국 정·관계 인사를 만나 비슷한 요청을 했다. 한국무역협회는 25일 논평에서 “한·미 FTA 개정 협상 서명을 환영하지만 자동차 고율 관세 부과 가능성이 남아 있다”며 “향후 통상역량을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