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앞장서서 북·미 협상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사흘 전 김 위원장으로부터 엄청난 편지를 받았다. 한국과 북한에서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1차 평양회담 직후 “흥미롭다”는 반응에 이어 더 강한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까지 묻어나는 대목이다. 그가 전문가의 핵 폐기 참관을 넘어 “북한이 핵 사찰을 허용했다”고 언급한 점으로 미뤄 김정은의 친서에는 핵시설의 순차적인 폐기나 검증 가능한 핵 사찰을 수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폼페이오 “북·미 협상 즉시 착수”
뉴욕·빈에서 북핵 대담판 열릴 듯
한반도 정세, 불가역적 강물 건너나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트럼프 1차 임기 내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미국이 못 박았다는 점이다. 임기 내 비핵화 완료는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과 면담한 자리에서 했다는 언급이다. 이는 앞으로 ‘28개월 안에 이룰 핵 폐기 로드맵’을 뉴욕과 빈으로 가져오라는 요구다. 미국은 북핵 로드맵에 핵탄두와 물질, 핵시설 등의 리스트 신고와 검증 시점이 응당 담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과연 ‘북·미 간 근본적 관계 전환(종전선언→평화체제 및 수교를 의미)’ 카드와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맞바꿀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하지만 북한 노동신문에 문 대통령의 방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전문, 양 정상의 기자회견 주요 발언이 그대로 소개됐다. 또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약속했다”는 말도 전달했다. 일단은 좋은 신호다.
하지만 미국 중간선거(11월 7일)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적극적 입장을 언제까지 유지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일단 미국은 한쪽에서 협상을 재개하면서 다른 쪽으론 대북제재의 고삐를 그대로 쥐고 나갈 공산이 크다. 이미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 전날 유엔 안보리 긴급 회의까지 소집해 러시아의 제재 이탈을 규탄한 바 있다. 또 미국 의회와 싱크탱크 사이에는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북·미 간 신경전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얘기다.
문 대통령은 이번 평양 방문을 통해 70여 년간 고착된 남북 간 관행과 어법을 돌파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집단체조를 관람하면서 15만 명의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했고, 평양 시민들에게 90도 허리 숙여 인사했다. 또 귀환 직전 마지막 일정으로 백두대간의 시작점인 백두산에도 올라 김 위원장과 손을 잡았다. 결과적으로 남북관계를 기대 이상으로 개선시켰다.
문 대통령이 냉전 구도를 허물어뜨리는 이런 흐름을 주도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여전히 비핵화를 둘러싸고 남북이 합의하기는 쉽지만 미국을 설득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빠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당장 다음주 뉴욕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은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어제 한·미 정상회담을 의식해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며 평화협정의 출발점”이라며 “연내 종전선언을 목표로 트럼프 대통령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폼페이오 장관과 이용호 외무상의 뉴욕 회담, 더 멀게는 빈에서의 북·미 실무회담과 북·미 정상 간 2차 회담, 11~12월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빅 이벤트가 줄줄이 놓여 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순항하든, 그 반대이든 한반도 정세는 2018년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이전으로는 결코 돌아가지 못할 정도의 깊은 강물을 건너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