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전문가가 본 평양선언 "비핵화는 스톱, 남북관계는 과속"

중앙일보

입력 2018.09.19 16:14

수정 2018.09.1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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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평양공동선언'에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일단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중앙일보가 평양 공동선언이 나온 직후인 19일 오전(현지시간) 8명의 전문가에게 긴급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핵심이었던 '비핵화'에서 성과가 없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평양공동선언' 나온 뒤 미국 전문가 8명 긴급설문
"미국이 원하는 건 영변 뿐 아니라 모든 핵 리스트 제출"
"합의된 북한 개발계획,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 우려돼"
"'화염과 분노'로 돌아가지 않게 된 '성공한 회담'" 평가도

빅터 차.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남북한 협력에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비핵화에선 큰 진전이 없었다"며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또 한번 '핵 신고, 외부 검증 수용, 핵 불능화 일정 제시'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북한이) 영변과 서해(동창리)에서 양보 카드를 제시한 것은 결국 앞으로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는 중단하겠지만 그들의 (핵)무기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스콧 스나이더.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남북 간 관계 개선이 너무 앞서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미국의 상응조치 시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미국은 당초부터 영변에 국한된 사찰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핵 시설과 핵 물질에 대한 검증이 가능하게끔 '리스트'를 제출해야 (북미 협상이) 퍼즐을 맞출 수 있었는 데, 미국이 기다리고 원하던 답변을 얻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선언문만 보면 문 대통령의 '제안(offer)'은 많이 있지만 '요구하는 가격(asking price)'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공동선언만 봐서는 알 수 없다는 지적이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문 대통령이 다음 주 뉴욕에 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할 때 그게 뭔지 명확히 드러날 것 같다"고 예상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한반도 군사전문가인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 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해체를 위한 충분하고 실질적인 행동을 찾아볼 수 없다"며 "미국은 이제 '냉각탑 폭파' 같은 상징적 조치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전문가 참관 하에 폐기한다거나, '영변 핵시설 폐기' 등을 조건부로 제안한다거나 하는 것으론 미국의 눈높이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이다. 
 
맥스웰 연구원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은 별 것 아닌 것을 양보하면서 많은 것을 얻어가는 것 같이 보인다"고도 했다. "경제 지원을 얻기 위해 '상징적 액션'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문 대통령이 다음 주 유엔총회에 와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북)제재 면제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브루스 클링너.

 
보수계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문 대통령이) 실질적이고, 가시적이고, 명확한 북한의 약속을 전달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언문은 모호하고 매우 조건부적인 용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며 "문 대통령은 평양의 '유혹의 말'에 굴복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비무장지대(DMZ)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평화지역으로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다짐 또한 '정전 유지'라는 유엔사령부의 책임과 배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클링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언문이 나오고 1시간 만에 트위터로 "북한이 핵 사찰을 수용했다"고 반긴 것에 대해 "트럼프가 선언문을 읽고 부정확하게 내놓은 첫 반응을 볼 때 (평양선언을) 2차 북미정상회담을 정당화하기 위한 모멘텀으로 삼으려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브루스 베넷.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남북이 발표한 경제계획들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지난 달 북한 핵 활동 관련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만 봐도 북한은 올해에만 5~9개의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주장도 폈다. 
 
베넷 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예측하기 힘들지만, 협상 실무팀은 이번 회담 결과만으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만약 그렇게 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게 심각한 실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패트릭 크로닌

 
이 외에도 “종전선언은 다음주에라도 할 수 있지만 (확실한 비핵화가 없다면) 미국에선 이를 정치적 연극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할 것이다”(패트릭 크로닌 미 신안보센터 아태안보 소장), “비핵화 협상이 다시 미국의 몫으로 돌아온 만큼 문 대통령이 북·미 대화를 다시 트랙에 올려놨다고도 볼 수 있다”(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라는 의견도 있었다.     
 

정 박

 
해리 카자니스 미 국가이익센터 소장은 "3차 남북정상회담은 성공적"이라며 "김 위원장이 실제 약속을 지키는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이번 남북 간 합의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워싱턴이 찾고 있던 사인(sign)이었다"고 강조했다. 
 
 

해리 카자니스

그는 "이번 회담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누가 무엇을 양보했느냐가 아니라 남북 간 대화가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일상)이 돼 '화염과 분노'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됐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