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에 욕먹을 각오로 말한다…보수가 전작권 환수 앞장서라

중앙일보

입력 2018.09.13 00:02

수정 2018.09.13 08:17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박보균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전작권 귀환의 득실 해부
한반도 게임은 긴박하다. 상황은 곡절과 파란이다. 김정은의 변덕과 기습은 이어진다. 트럼프의 변칙과 파격은 계속된다. 문재인의 운전대 시야는 확장한다.
 
변화의 흐름은 거세다. 그 동력은 북한의 핵무장이다. 군사 분야는 격변이다. 한·미 연합훈련은 중단됐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논쟁거리다. 전시(戰時)작전권(전작권) 환수는 가시권에 들어갔다.

한·미동맹에 과도한 집착으로
안보의 자립·주인 의식 허약
군은 피터 팬 증상에 시달려

전작권 이양 반대의 보수는
웰빙·투지 결핍의 이미지
선제적 회수 자세가 재활 요건

환수의 배수진 치는 절박감이
국민적 용기와 투혼 생산
독자 핵무장 시각도 바뀐다

전작권은 유사시 작전·지휘 통제권이다. 6·25 한국전쟁 이래 주한미군사령관의 권한이다. 전작권 반환은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 추진됐다. 그 계획은 이명박 정권 때 3년 미뤄졌다. 2015년으로 연장됐다. 박근혜 정권에선 사실상 무기 연기됐다. 그 이유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때문이다. 한국군의 대응능력이 갖춰질 때까지 늦춰졌다.


그 전제조건의 충족은 불가능하다. 핵무기의 유일한 맞수는 핵무기여서다. 한국군의 재래식 무기는 북한 핵을 막을 수 없다. 예비역 장군, 보수 정치인 다수는 그런 이유로 환수에 반대한다. 그들의 문법은 고정돼 있다. “아직 환수할 때가 아니다.” 하지만 회수는 문재인 정부 ‘국방개혁 2.0’ 의 핵심 요소다. 반환 시점은 2023년으로 예고됐다(송영무 국방장관).
 

전작권 환수의 7대 효과

작권은 한·미 동맹의 상징이다. 문 대통령의 가치평가는 실감난다. “한·미 동맹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기반이자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 성장의 기틀이 돼주었다(6월 29일 주한미군의 평택기지 이전 축사).” 한국은 그렇게 동맹에 기댔고 활용했다.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랬다.
 
하지만 동맹에의 집착은 과도했다. 한국의 일방적 의존이었다. 그것은 치명적인 독소를 생산했다. 은근하면서 꾸준히 퍼졌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 국방의 주인의식이 헝클어졌다. 자주적 안보 투지가 허약해졌다. 송승종(군사학) 대전대 교수는 “오랜 세월 동맹을 고정 조건으로 여기다 보니 스스로 나라를 지킨다는 정신력이 약해졌다”고 했다.
 
북한의 핵무장은 30년 집념의 산물이다. 그것은 미국의 정책 실패다. 한국의 무기력한 대응 탓이다. 핵무기는 마법을 부른다. 핵은 남북한의 경제 격차를 혼란스럽게 했다. 북한의 젊은 영도자는 으스댄다. 그동안 한국의 리더십은 무엇을 했나. 대다수 한국인은 강 건너 불구경을 했다. “미국이 막아주겠지, 6자회담에서 중국이 나서겠지”라고 했다. 그런 의타심이 번졌다. 핵은 절대무기다. 북핵은 한국의 생존 문제다. 하지만 당사자는 외면하고 기피했다. 유체이탈식 분석·해설은 난무했다. 그것들은 도덕적 집단 타락이다. 그것은 비겁한 자기기만의 장면들이다.
 
트럼프의 동맹에 대한 시선은 돈이다. 그는 사드의 성주 배치에 화를 냈다(우드워드 신간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 “이건 똥덩어리(a piece of shit) 땅이다. ~끔찍한 거래다.” 그의 반응은 비용 때문만은 아니다. 그 바탕에 한국의 안보 자세에 대한 불만이 있다. 국방의 자활과 주도력 결핍은 불신을 산다.
 
한국군은 오랫동안 전작권 회수에 반대했다. 그 이유로 한·미 동맹과 대북 군사 억제력의 약화를 내세운다. 그 때문에 최고통수권자로부터 수모를 당한 적도 있다. 대통령 시절 노무현의 비판은 군에 각인됐다(2006년 12월 평통 자문회의). “자기 군대 작전통제도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들을 달고 거드럭거리고 말았단 말입니까…. 미국 뒤에서 숨어가지고 ‘형님 백만 믿겠다’ 하고.”
 
노무현의 표현은 거칠었다. 하지만 그 말들은 핵심을 찌르며 달린다. 한국의 국방비는 북한보다 많다. 경제력(국내총생산)은 45배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군 수뇌부는 홀로서기를 꺼린다. 피터 팬(Peter Pan)증후군에 시달려 왔다. 군은 덩치 큰 어른이다. 하지만 자활의지는 미흡하다. 전작권은 군사주권과 직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지는 아프게 형성된다. 전작권 이양의 거절은 군사주권 포기로 투영된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이명박 정권)은 전작권 환수론자다. 그의 진단은 선명하다. “환수에 따른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고수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심각하다. 스스로 국방에 책임져야지 미군에 미루면서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잃게 했다.” 그는 그 주장을 2013년부터 폈다. 12일 자기 발언의 유효성을 확인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은 패배했다. 미군 무기는 그 시절 최첨단이었다. 하지만 미군은 적군의 조국 수호 투혼에 둔감했다. 그것은 계량화하기 힘든 무형적 요소다. 승리의 영웅은 국방장관 보 구엔 지압(1911~2013년)이다. 나는 100세 때의 그를 서면 인터뷰했다(2011년). 베트남전쟁 승리의 요체는 전쟁 의지였다. 그는 “전쟁 승패는 최신 무기에서 갈리지 않는다. 단결력과 의지를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아는 국민은 이긴다”고 했다. 전작권은 ‘무형적인 힘’에 대한 감수성을 준다.
 
국의 보수 정치권은 국방의 자활론에 미숙하다. 보수의 가치는 희생과 헌신, 안보 투지다. 지금의 보수정치인 대부분은 전작권 이양을 반대한다. 하지만 그들은 회수의 득실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 그것은 관행과 웰빙에 젖은 탓이다. 일부에선 친미의 언행을 넘는다. 사대적 근성도 드러난다. 성찰과 용기는 빈약하다. 그런 행태는 젊은 세대의 비웃음을 산다. 진보좌파는 조소로 반응한다.
 
한국 사회의 위기관리 DNA는 독특하다. 집단 각성은 늦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반전(反轉)은 역동적이다. 신바람 속에서 재기는 화려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다. 다수 국민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금 모으기 운동이 확산됐다. 국제사회는 경이적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시 대통령 김대중은 이것을 “위기 극복의 신바람 문화”라고 했다.
 
안보는 불확실한 환경에 노출됐다. 한·미 연합방위 체제는 재구성의 대상이다. 미군 지휘에 기대는 편한 시절은 사라졌다. 회수의 시기상조론은 미련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전작권 귀환의 배수진이다. 그 풍경은 절박감을 생산한다. 그것으로 자력 국방의 신바람이 일어난다. 안보 불감증의 퇴치에 나서게 한다. 신바람은 도전적인 적응력을 넣어준다.
 
1970년대 대통령 박정희는 결연함을 보였다. 미국과의 갈등 시기다. 그것은 주한미군 철수론 때문이다. 그는 배수진을 쳤다. “나가려면 나가라.” 그는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박정희는 위기를 기회로 포착했다. 그는 자주국방의 산업 개발로 활용했다. 그것으로 중화학공업 시대가 열렸다. 미국은 그의 결기와 타협했다.
 
군의 이미지는 장렬해야 한다. 사병과 하사관, 초급장교 세계에 그런 면모가 살아 있다. 하지만 군 수뇌부 속에서 비장함은 찾기 힘들다. 그들은 문민의 파도에 표류하고 있다. 군의 재정비가 시급하다. 출발은 익숙함과의 결별이다. 그것은 한·미 연합방위에 기대는 의타심의 제거다. 그것으로 국민 사이에 제복의 존경심이 살아난다. 그런 자세는 동맹 체제의 건강성을 강화한다. 국제관계는 인간 생활과 같다. 남에게 의존하면 비굴해진다. 그런 우정은 속으로 시든다.
 
작권 전환은 새로운 지평이다. 하지만 주한미군 철수와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남은 5년의 정돈 시기도 있다. 과거 천영우의 보완책은 정밀하다. 그는 “한미연합사를 대행하는 지휘 합동체계를 짜놓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지상군 사령관을  한국군이 맡고, 초전에 중요한 공군·해군은 지금처럼 미군이 지휘한다”는 것이다.
 
18일부터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그와 함께 남북 경협은 속도감을 낼 것이다. 거기에 들어갈 자금은 천문학적 규모로 추정된다. 배수진의 결행은 냉철한 시각을 사회에 주입한다. 그런 상황에선 북한 문제의 접근이 정교해진다. “대북 경협이 밑 빠진 독에 퍼주기인지, 나의 세금은 얼마나 쓰이나”를 따지게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구상은 아직 모호하다. 의지와 실천은 다르다. 배수진에 서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김정은의 언행에 대한 추적이 면밀해진다. 북한 문제가 자신의 생존 문제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방산비리는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다. 주요 원인은 국방의 주인 자세 부족 탓이다. 2017년 나는 베트남의 디엔비엔푸에 갔다. 프랑스를 물리친 승전(1954년) 기념일 무렵이다. 그곳에서 80대 베트남 노병의 회고는 강렬했다. “그 시절 중국과 옛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무상 지원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 사정이 달라져 주요 무기 몇 종류는 샀다. 우리는 철저하게 성능 검사를 하고 돈을 아꼈다.” 그것은 나라를 스스로 지킨 사람의 기억이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 독점 시대다. 한국은 오래전에 핵무장을 포기했다. 그 대안은 살아 있다.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 자위적 핵무장론이다. 그에 대한 논의의 파급력은 크지 않았다. 대부분 ‘온실 속 논의’에 머물렀다. 주한미군의 존재감 때문이다. 하지만 전작권의 반환은 새로운 환경을 만든다. 그런 대체 카드를 치열하게 바라보게 한다.
 
소설가 이문열은 보수 재건의 요건을 압축했다. “보수의 재건을 위해선 상징적 죽음이 필요하다.” 그것은 오래된 사고방식의 해체다. 한·미 연합방위에 의존하는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첨단장비는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절실한 것은 안보의 주도 자세다. 독자적 국방 투지가 보수의 재활 조건이다. 전작권의 배수진은 공세적 상상력을 준다. 그것은 북한 핵무장에 대한 반격의 묘수다. 보수진영은 전작권 되찾기에 나서야 한다. 선제적 자세가 필수적이다. 보수가 환수에 앞장서야 한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