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무하마드 깐수'라는 이름의 남파간첩이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하지만 학자로서 그의 이력은 전향 후 오히려 빛을 발했다. 『씰크로드학』『고대문명교류사』 등 저서들을 잇따라 쏟아내면서다.
정 소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나와 아프리카와의 인연은 60년 전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1955년 중국의 첫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이집트 카이로 대학을 찾았다. 이후 60년대 초반 모로코 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일하며 당시 아프리카 전역에 들불처럼 번지던 각국의 식민 독립투쟁을 도왔다.
정 소장은 "백두산 오지에서 태어난 촌뜨기였던 내가 이집트라는 고대 문명, 아프리카라는 치욕을 당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당시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런 깨달음은 62년 북한 국적 취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북한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아프리카는 잊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아프리카를 제대로 연구해 소개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고 했다. "이번 책의 화두가 설움이라며, 책을 써서 아프리카의 아픈 과거사를 설욕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아프리카 '설욕의 문명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 배경에서 정 소장은 최악의 노예무역을 경험했던 아프리카가 어떻게 해서 조각조각 식민지로 분할돼 수 백 년간 빈곤과 무지로 고통받게 됐는지를 살핀다. 60년대 들어 70~80%가 독립을 쟁취한 아프리카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도 관심사다. 이집트·세네갈·가나·모잠비크 등의 사회주의 실험, 그 허와 실을 짚었다고 했다.
정 소장은 "최근 국내 통일 논의는 우려스럽다"고 했다. 통일에 대한 당위성과 불가피성이 희박해서다.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 만으로 통일의 이유가 충분하다고 했다. "북한 땅에 남아 있는 세 딸을 30년 동안 못 봤다"며 "특수 이산가족 신청을 해서라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