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인도네시아에 있는 치킨 전문점 ‘아얌 게프렉 주아라’에 걸린 안내 문구다. 이 음식점은 미국 달러를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로 환전한 당일 영수증을 보여주면 음식값을 받지 않는다. 아궁 프라세티오 우토모 사장은 “루피아를 아끼는 마음을 퍼뜨리기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며 “지금까지 모두 83명에게 무료 음식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손님들을 “루피아 전사들”이라고 불렀다. 루피아 살리기 이벤트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도 확산 중이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는 #반타이달러(bantaidolar). ‘달러를 도살하라’는 뜻이다. 이 캠페인은 기업의 흔한 마케팅 술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루피아화 급락 공포가 인도네시아 일상으로 퍼지고 있는 걸 보여준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통화 가치 98년 이후 최저 수준
2분기 경상수지 적자 GDP 3%
아르헨·터키 거친 신흥국 위기
아시아 국가로 전염되나 촉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신흥국 위기가 다른 국가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해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에 이어 인도네시아까지, 투자자들이 신흥국 자산을 성급히 내다 팔고 있다”며 “위기가 전염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한 국가에서 손실을 본 투자자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라 자산까지 매도하거나 모든 신흥국을 똑같이 취급해 무차별적으로 매도하기도 한다”며 “이런 과정을 거쳐 위기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전염된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루피아화 급락에 민감하다. 98년 외환위기 당시 통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치솟고 식량난과 폭동으로 이어졌으며 정권이 교체됐다. 물론 오늘날 인도네시아 경제는 98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졌다. 하지만 통화가치 하락 속도를 늦췄을 뿐 근본적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근 수입 화장품·자동차 등 소비재 1147개 품목에 부과하는 관세를 품목당 7.5~10%로 인상했다. 수입을 억제해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또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장관들은 수출 기업들이 달러로 받은 대금을 루피아화로 환전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수입물가엔 상승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 자카르타 시내 화장품 판매점 직원 누르 코마리아(37)는 “구찌 향수 가격이 300만 루피아에서 320만 루피아로 뛰었다”며 “판매가 줄어 매출에 타격이 있다”고 말했다. 조사업체 닐슨은 수입 유제품·쇠고기·밀 등을 함유한 식품 가격이 가장 먼저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중앙은행은 지난 5월부터 기준금리인 7일물 역환매조건부채권 금리를 네 차례에 걸쳐 1.25% 올리고 국채를 대량 매입하는 등 시장 개입에 나섰지만, 루피아화 약세 흐름을 뒤집지는 못하고 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