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선제적인 일련의 조치들’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 등이다. 이에 ‘상응하는 조치’는 결국 종전선언이 된다. 종전선언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관련, 정 실장은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으로 관련국 간 신뢰를 쌓는 데 필요한 첫 번째 단계로 생각하며 북한도 이런 우리의 판단에 공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이 미국에 메시지를 전달해달라고 요청했다”고도 밝혔다. 김 위원장이 한국 특사단을 교착 상태인 북·미 협상의 메신저로 삼아 비핵화 협상의 공을 미국에 넘기며 종전선언을 다시 요구한 게 된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이를 진전으로 평가할지는 미지수다. 정 실장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ㆍ미 적대 역사 청산과 비핵화 실현’을 언급했다. 그런데 이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밝혔던 ‘1년 내 비핵화’보다 더 늘어났다. 볼턴 보좌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4ㆍ27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전략적 결단을 내린 시점으로부터 1년 이내’에 비핵화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첫 임기(2021년 1월 종료)’로 하면 비핵화 완료 시한이 2019년 4월에서 1년 9개월 더 늘어난 셈이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비핵화 단계를 더 잘게 늘리는 게 아니냐는 ‘살라미 전술’을 우려할 수 있다.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인식차가 드러났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 실장이 전한 김 위원장의 발언을 종합하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시험장 폐기를 비핵화 조치로 인식한다. 그러나 한 전직 외교관은 “트럼프 정부는 이를 비핵화 조치로 보지 않는다. 폐기했다지만 검증도 되지 않은 데다, 북한의 핵 능력과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미국은 ‘북한이 초기 비핵화 조치 혹은 실질적 조치를 취하면 종전선언과 교환할 수 있다’까지는 양보할 수 있는 분위기인데, 북한은 종전선언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이후 취할 실질적 비핵화 조치는 제재 완화 등 다른 보상과 연결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동창리, 풍계리 조치와 종전선언을 등가로 보는 반면 미국은 진짜 비핵화 조치가 종전선언에 앞서 먼저라는 생각인 만큼 이런 인식의 격차를 어떻게 메우느냐가 문제”라고도 설명했다.
이 때문에 동시 행동 원칙에 대한 북한의 인식 변화나 미국의 양보 없이는 북ㆍ미 간 협상 교착 국면의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가 않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일각에선 연내 종전선언에 합의한 남북이 공동으로 미국을 설득하는 구도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문 대통령이 18~20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협의하기로 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에서 실질적 진전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제 말로 하는 의지 표명보다는 신고-검증-폐기라는 비핵화의 골자로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지혜ㆍ권유진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