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긴 못 들어가요. 공항에서 나올 수만 있고, 들어가지는 못한다고 들었어요.”
간사이(關西)공항으로 달려가던 중 통화한 오사카(大阪)총영사관 관계자의 말은 실제 현장 상황과는 달랐다.
공항과 육지를 잇는 연결 다리 부근에 도착한 건 오후 2시30분쯤이었다. 4일 초속 58.1m의 강풍에 휩쓸려 떠내려온 유조선이 들이받은 바로 그 다리다.
공항에 고립됐던 승객들을 구출하는 작업이 5일 새벽부터 시작됐다. 당초 연결다리는 유조선과 충돌한 쪽과 그 반대쪽 모두 불통이었다. 하지만 승객의 탈출을 돕기 위해 반대쪽 3차선 중 1개 차선을 열었다.
태풍에 떠밀린 유조선이 들이받아 연결 다리 끊겨
영문도 모르는 승객들 "이게 무슨 줄이냐" 아우성
기자가 간사이 공항 빠져나가는 데만 6시간 걸려
정전으로 물 안 나오는 화장실, 휴대폰은 불통
다리 길이는 3.7km 가량이었지만 1개 차선만을 열어 교대로 통행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10~20대의 차량이 공항에서 빠져나오면 다시 10대~20대가 공항으로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다.
2시간을 대기하다 4시30분쯤에야 드디어 다리에 올라섰다. 시속 30~40km로 조심스럽게 다리를 통과해 공항에 진입했다.
이날 새벽 6시부터 버스와 고속 페리로 승객들을 탈출시켰다고 했지만, 공항엔 여전히 많은 승객들이 남아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행렬은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당초 고립된 인원은 승객과 직원을 포함해 5000명 정도로 파악됐지만, 사실은 8000명에 달했다. 버스 15대와 고속선 3척으로 탈출시키기엔 너무나 시간이 많이 걸렸다.
줄 잘 서기로, 화를 잘 참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이었지만 지옥과 같은 공항 내 상황때문에 그들의 인내도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열 시간 가깝게 줄을 섰는데 아직 차를 못 타고 있다"는 사람들, 일부는 "화를 낼 힘조차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정전과 더위, 쪽잠, 휴대폰 불통으로 인한 정보부족과 벌인 사투때문이었다.
고립된 한국인들의 분노는 머리 끝까지 차 올라 있었다. 기자를 보자 마자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발 좀 알려달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심지어 “중국인들은 먼저 빠져나가더라. 중국 대사관에서 차를 대줘서 먼저 빠져나갔다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우리 대사관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여성도 있었다. 민심은 그만큼 흉흉했다.
정전은 많은 걸 불편하게 만들었다. 공항 화장실에선 변기의 자동 물 내림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자동 센서 방식으로 작동하는 세면대의 수도꼭지에서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취재와 기사 전송을 마친 뒤 오후 8시30분쯤 공항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지만 문제는 오히려 그때부터였다.
승객들을 싣고 육지로 나가려는 버스, 버스를 기다리다 못해 자신이 몰고 온 자동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려는 일부 승객들의 차량, 긴급 공사 차량 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안그래도 1개 차선 통행으로 정체됐던 연결 다리의 교통 상황은 최악이었다.
공항쪽으로 들어올 때 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1시간에 20m를 겨우 이동할 정도의 최악의 거북이 정체상황이 이어졌다. 탈출 행렬에 동참한 지 6시간 여만인 6일 오전 2시30분에야 다리를 건너 다시 육지를 밟았다. 공항 진입을 위해 다리 앞에서 줄을 선 지 12시간 만이었다.
오사카=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