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셰프이자 요리로 미학하는 셰프’로 불리는 박찬일 셰프 얘기다. 박 셰프가 요리사가 된 데엔 운명이나 철학적 고뇌가 있을 것만 같지만, 그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고 했다.
사회부 기자에서 전설의 요리사로... 박찬일 셰프가 전하는 '장인의 길'
글 쓰는 게 좋아서 기자가 됐지만, 사람을 만나 진실을 캐내는 건 고역이었어요. 혼자 할 수 있는 찾다가 요리사가 됐죠. 뒤늦게 시작해 빨리 독립할 수 있는 게 이탈리아 음식이라 그걸 택했고요. 한식이나 중식·일식 셰프는 프라이팬 잡는 데만 몇 년 씩 걸렸거든요.
'일의 의미'를 묻기 전에 '일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의미있게 일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생계를 위해 일해요. 그저 할 뿐이죠. 여건만 되면 놀고 싶습니다. 다 그렇지 않나요?(웃음)
박찬일 셰프는 지식 콘텐츠 플랫폼 폴인(fol:in)이 준비한 9월 스튜디오 ‘왜 일하는가’에 연사로 선다. 일의 의미를 찾는 직장인에게 일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풀어놓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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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에서 유학하셨는데요, 이탈리아 요리의 정수는 뭔가요?
- 즐겁게 요리한다는 겁니다. 제가 유학길에 올랐던 2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요리사는 3D 업종이었어요. 요리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요리사가 된 사람들이 많았죠. 하지만 이탈리아 요리사는 달랐어요. 좋은 재료를 가지고 즐겁게 만든 흥미로운 결과물이 요리였어요. 그리고 그 결과물을 사람들은 존경하고 애정했고요.
- 재미있고 즐거워서 요리하시나요?
- 물론 요리하는 일을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는 게 더 좋아요. 여건만 된다면 놀고 싶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일하는 거죠. 기왕이면 재미있는 일을 하려고 요리를 하는 것이고요.
- 셰프님께 일이란 현실과 이상의 절충인가요?
- 모든 일은 적성에 안 맞을 수밖에 없어요. 적성이라는 게 뭔가요? 사회와 제도가 요구하는 겁니다. 직업 선택지 중에 백수가 있나요? 사회는 백수는 적성일 수 없다고 말해요. 하지만 제 적성은 백수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어요. 다만 누릴 수 없을 뿐인 거죠.
- 셰프님은 왜 일하시나요?
- 먹고 살기 위해서요. 그 와중에 그나마 나에게 맞는 차악과 차선을 찾는 게 제가 해온 일이고,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일이죠.
그는 인터뷰 내내 “직업은 신성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일의 의미에 천착하는 것만큼 일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고민해야 의미 있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많은 사람이 ‘일의 의미’를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 퇴사를 결정합니다.
- 수많은 직장인이 일의 의미를 찾아 퇴사하는 건 역설적으로 일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생의 의미를 찾는 인도의 수행자도 생활해야 한다는 겁니다.
- 무슨 뜻인가요?
- 일의 의미를 찾아 퇴사해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대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워크라이프밸런스를 추구하는 흐름은 생계 때문에 퇴사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이 찾아낸 궁여지책이고요. 사실 삶이 다 그렇습니다. 묘수고 꼼수에요. 퇴사하지 못하고 워라밸을 추구한다고 기죽을 필요 없습니다. 다만 삶과 일의 균형을 찾을 때 일이 아니라 삶에 방점을 찍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박 셰프는 요리사이기보다 철학자였다. 그가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같은 책을 꾸준히 펴내며 오래된 식당에 천착하는 이유도 있을 것 같았다.
- 왜 노포(老鋪), 오래된 식당에 주목하시나요?
- 노포는 그 지역의, 그 지역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거기서 수많은 이들이 사람을 만나고 음식을 먹었어요. 그리고 그걸 기억하고 추억하죠. 그런 역사가 사라지고 있어요. 식당은 힘든 일이라 가업으로 물려주지 않으니까요. 역사가 사라지기 전에 저라도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 책에도 쓰셨듯 노포는 살아있는 전설인데요, 그분들은 왜 일하시나요?
- 이유는 없어요. 그 일이 주어져서 할 뿐입니다.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르듯 그냥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하기도 하고, 시집을 오면서 시작하기도 하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서 하기도 하고요.
- 수많은 식당이 문을 열지만, 또 그만큼 문을 닫습니다. 노포가 살아남아 전설이 된 건 무엇 때문인가요?
-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전설이 됩니다. 너무 똑똑하고 생각이 많으면 가게는 산으로 가요. 노포의 주인들은 대부분 우직합니다. 다른 생각을 할 줄 모르는 분들이죠.
이번 컨퍼런스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박찬일 셰프는 “일의 의미만큼이나 일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묻고,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우직하게 내 길을 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박 셰프가 연사로 서는 이번 컨퍼런스는 오는 20일 오후 7시 서울 성수동 카페 월닷서울(구 레필로소피)에서 열린다. 티켓은 폴인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