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아닌 가사로 빌보드 메인차트 정상을 두 번이나 찍는 이례적 행보에 포브스는 “방탄소년단과 한국 음악계에만 중요한 일이 아니라 2010년대 팝 음악계 전체에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방탄의 성공이 이제 K팝의 성공이나 한 흙수저 보이밴드의 출세담 수준을 넘어섰다는 의미다. 방탄의 인기는 그들이 단지 몇 개의 히트곡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방탄과 팬들로 구성된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인터넷(유튜브와 SNS)이 무기였다. 인터넷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혁명, 새로운 문화소비 방식이 맞물렸다. 다원적 가치에 눈뜨고 있는 서구 사회의 변화도 주효했다. “음악적 메시지와 미디어 변화, 세계화 과정으로 보다 열린, 다문화적 감수성의 수용자”(홍석경 서울대 교수)가 3박자를 이뤘다.
3세대 아이돌 방탄의 진화
인터넷 놀이문화, 한국식 팬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 전략
서구 수용자 변화도 결정적
결정적으로 팬클럽 ‘아미’를 통해 한국식 팬문화가 수출됐다. 팬덤이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조직화하는 것이다. 팬챈트(응원구호 등) 등 집단 의례를 하고 미션(음원 스트리밍 등)을 수행하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방탄이 도전 목표를 세우면 팬들이 그것을 달성하는 식이다. 스마트폰으로 늘 어딘가에 접속돼 기존 오프라인 관계의 결속력은 약해지는 반면 온라인 커뮤니티의 결속력은 공고해지는, 디지털 시대의 초상이다.
이들의 음악이 하나의 스토리로 구성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번에 연속해 차트 1위에 오른 두 앨범은 ‘러브 유어셀프 기-승-전-결’ 시리즈의 ‘전’과 ‘결’에 해당한다. 주제만 연작 수준이 아니라 가사나 뮤직비디오 이미지, 멤버의 캐릭터들이 정교하게 연결돼 있다. 팬들은 가사나 뮤직비디오 영상을 보면서 숨은그림찾기 하듯 그 의미를 해석하며 ‘덕력(팬의 내공)’을 과시하고 ‘논다’. 인터넷에는 팬들의 해석 동영상이 돌아다닌다. ‘입덕(팬에 입문)’하면 전체 음악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 음악까지 찾아 들으며 조회수를 높인다. 이런 놀이문화가 가능하도록, 음악 소비가 주로 유튜브 플랫폼에서 이뤄진 미디어 환경도 큰 몫을 했다. 이렇게 형성된 ‘방탄 월드’는 개별 단위 음악을 넘어 음악 전체로, 또 게임 등 여타 장르로 확장된다.
이는 마블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에 비견된다.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 여러 마블 캐릭터들로 이뤄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큰 스토리 세계가 있고, 그 아래 각각의 캐릭터들이 자기들의 이야기를 가지 쳐 나가며, 장르도 영화·만화·게임·애니메이션 등으로 확대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 말이다. 팬들에게는 ‘덕질(팬활동)’의 대상이 무한 확대되고, 비지니스 관점에는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이다. 물론 ‘방탄 유니버스’를 다 몰라도 개별 음악을 즐기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다만 그가 골수팬인지 아닌지를 구분 지을 뿐이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방탄을 K팝 3세대의 대표주자로 꼽는다. 아이돌 시스템을 처음 선보인 1세대, 활동반경을 해외로 넓힌 2세대와 달리 3세대는 데뷔 때부터 글로벌 무대를 대상으로 하고 한국보다 해외 시장에서 더 높은 경쟁력을 갖기도 한다. K팝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 자체를 해외에 수출하는 것, 한국인 멤버가 없는 K팝 밴드, 다국적 밴드도 3세대에 해당할 것이다. 다국적 멤버 풀이 있고 그때그때 나라별로 팀을 쪼개 활동하는 NCT모델도 있다. K팝 아이돌 시스템의 진화다.
이번 타이틀곡 제목이 ‘아이돌’이라는 것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아티스트라 부르든 아이돌이라 부르든 난 내 길을 가겠다’는 메시지다. 산업적 가능성이나 ‘국위 선양’은 인정하면서도 음악적 평가에는 인색했던 K팝 아이돌 음악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계속 도전하겠다는 의미다.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는, 아마 그들도 아직은 잘 모를 것 같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