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이민아(27·고베 아이낙)는 극존칭을 써가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선수 시절 ‘테리우스’라 불렸던 대선배 안정환(42)을 ‘안정환님’이라고 불렀다.
아시안게임 맹활약 아이돌급 인기
일본전 동점골 이어 대만전 쐐기골
국내외 SNS 팔로워 10만명 넘어
내년 6월 여자월드컵서 활약 예고
이민아는 그런 ‘안정환님’을 닮고 싶다고 했다.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고 돌아온 이민아와 4일 인터뷰를 했다. 가수 민아, 배우 고아라를 닮은 귀여운 외모로 ‘축구 아이돌’로 불리는 그는 “안정환 님이 ‘외모 때문에 더욱 열심히 축구를 했다’고 말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나도 축구선수가 본업인 만큼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아는 지난달 28일 세계 6위 일본과의 아시안게임 4강전에서 0-1로 뒤진 후반 23분 헤딩 동점골을 터뜨렸다. 중국 무협만화에 나오는 권법 소녀처럼 껑충 뛰어올라 헤딩골을 뽑아냈다. “키가 작은 데도 헤딩골을 넣었다”고 하자 이민아는 “내 키가 1m58.6㎝다. A매치 데뷔골도, 올해 첫 골도 헤딩으로 넣었다”고 강조했다. 헤딩골을 넣은 후 울먹이며 동료에게 달려갔던 이민아는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따라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했다”고 털어놨다.
1-2로 뒤진 후반 막판엔 페널티 박스 안에서 현란한 드리블을 한 뒤 회심의 슛을 쐈지만 상대 선수에 막혔다. 그의 플레이를 지켜본 축구 팬들은 잉글랜드 첼시의 에덴 아자르(벨기에)에 빗대 ‘이민아자르’란 새 별명을 붙여줬다. 이민아는 “별명이 쑥스럽고 오글거린다. 아자르 경기 영상을 자주 보는데 키가 작지만 저돌적”이라며 “당시 드리블을 할 때 앞에 있던 선수가 일본 소속팀 동료였다. 걸려 넘어져 페널티킥을 유도할까 하다가 일본 선수를 제쳤다. 그런데 슈팅 순간 다리에 쥐가 나서 힘이 제대로 실리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한국은 경기를 지배하고도 1-1로 맞선 후반 41분 임선주의 자책골로 1-2로 졌다. 이민아는 “선주 언니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앞서 난 골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결국 팀원 전체의 책임”이라며 “선주 언니가 홀로 짐을 안고 가야 할 생각을 하니 경기가 끝난 뒤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민아는 대만과의 3~4위전에선 쐐기골을 터뜨리며 한국이 동메달을 따는 데 주역이 됐다.
이민아는 “일본 이적 후 두 달간 발목 부상으로 결장했다. 그런데 일본팬들이 ‘민아상,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셨다”며 “예전엔 그라운드 밖에서는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어서 치마를 입었는데, 요즘엔 집에서 쉴 때는 트레이닝복을 입는다”고 말했다.
이민아는 깜찍한 외모와 달리 그라운드에선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근성 있는 플레이를 펼친다. 축구 팬들은 이젠 이민아를 향해 ‘외모에 축구 실력이 가려진 선수’라고 평가한다. 이민아는 “축구보다 외모가 주목을 받으면서 부담이 됐지만 이겨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제 노력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축구는 늘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돌려 말하면 성과가 없다는 의미다.
이민아는 “아시안게임 목표가 메달 색을 바꾸는 것이었는데,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며 “남자축구는 비난을 받을 때도 많지만, 여자축구 입장에선 그런 비난 받는 상황마저도 부러웠다. 여자축구도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국민이 응원해주실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년 6월에 프랑스에서 여자축구 월드컵이 열린다. 2015년 월드컵엔 출전하지 못한 이민아는 “이제 졌지만 잘 싸웠다는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다. 생애 첫 월드컵에 나가 남자축구 못지않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고 다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