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고 발 묶인 노인들 …그 실버타운에 무슨일이

중앙일보

입력 2018.09.04 13:00

수정 2018.09.0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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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15)
오래전 서울 근교에 있는 실버타운을 방문한 적이 있다. 바로 인근에 유명 스키 리조트가 있었다. 그 리조트의 숙박시설인 콘도미니엄이 산 능선을 따라 죽 늘어 서 있었다. 실버타운에서는 그 콘도미니엄이 올려다보이고 그 콘도미니엄에서는 실버타운이 내려다보였다. 능선을 따라 배치된 콘도미니엄은 전망이 좋고 햇볕도 잘 들었다. 
 
반면 계곡에 깊숙이 들어있는 실버타운은 전망도 꽉 막혀있고 그늘이 많이 져 어두웠다. 한눈에 봐도 그 실버타운에서 계속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분위기였다.
 
실버타운 부도로 20여명 입주 노인 발 묶여

실버타운의 부도로 20여명의 입주 노인들이 난방이 안 되는 방에서 자고, 식사를 스스로 만들어 먹는 등 건물에 발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중앙포토]

 
그 시설을 방문한 계절은 초겨울이었다. 주변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박혀있어 그늘이 지고 추웠다. 시설 내부로 들어가니 난방 기운이 전혀 없고 외부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텅 빈 시설에는 관리하는 사람도 없고 오랜 시간 방치된 듯 청소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 지하실을 둘러보던 중식당에서 한 무리의 노인을 만났다. 식사 중이었는데, 20여명 정도 됐다. 실버타운이 부도가 나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난방이 안 되는 방에서 자고 식사는 입주 노인들이 스스로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해당 시청에 가 입주자들에 대한 대책을 물으니 전혀 방법이 없다고 했다. 대부분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입주 때 약속했던 의료진 방문도 이뤄지지 않아 갑자기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면 걱정이라고 했다. 그런 환경에서 겨울을 나는 것이 가능할지 걱정됐다.


그 시설을 가보자고 했던 사람은 의료인 출신으로 실버타운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새로 실버타운을 만들려고 서울 근교부터 지방까지 부지를 물색하고 다녔다. 이렇게 부도가 난 시설을 인수해 리모델링하고 새로운 입주자를 모집하는 사업도 구상했다. 그의 꿈은 고국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해외동포를 입주시키는 거대한 실버타운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몇 가지 사업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요인이 생겨 그 실버타운 인수는 진행되지 않았다. 시설인수는 무산됐지만, 그곳에서 힘겹게 살던 노인들이 늘 걱정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실버타운 인근을 지날 때면 잠시 들러서 상황을 보기도 하고 산 위 콘도미니엄 주차장에서 내려다보기도 했다. 몇 해가 지나서야 그 시설이 어느 정도 정상화의 길을 걷게 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실버타운 바람이 분 적이 있다.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실버타운을 짓기만 하면 좀 여유 있는 노인들이 보증금 들고 입주할 것이란 기대가 많았다. 실제로 평생 도시에서 출퇴근하고 살다가 산수 좋은 곳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다양한 생활 프로그램이 있고 매 끼니 식사도 제공되는 실버타운은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겐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우후죽순처럼 실버타운이 생겨났다.
 
그러나 막상 입주해 생활해보니 아파트 생활보다 더 답답하고 불편했던 것이다. 생활 프로그램도 계속 반복돼 지루하고 늘 만나는 사람들과 대면하는 것도 신선함이 떨어졌다. 게다가 왕년의 자기 자랑이나 자식 자랑 늘어놓고 성격도 괴팍해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노인들과 같이 산다는 것이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 참여도 뜸해지고 타인과의 교류도 줄게 되면서 고립되는 노인들이 생겨났다.
 
그런 부정적인 소문이 실버타운 입주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급기야 경영난에 직면한 일부 시설은 나중에 입주자가 나갈 때 돌려줘야 할 보증금을 경영에 유용하거나 다른 수익사업에 빼돌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부도가 나면 입주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어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보증금 되돌려받는 법적 장치 마련해야 

도심에 있는 초고가 실버타운을 제외한 대부분의 실버타운은 입주자가 적어 경영이 무척 어렵다. 보증금을 확실하게 돌려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노인을 위한 주거형태를 갖춘 실버타운의 등장이 시급하다. [중앙포토]

 
요즘 도심에 있는 초고가 실버타운은 예외로 하고 대부분의 실버타운은 경영이 무척 어렵다. 입주자가 적기 때문이다. 실버타운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입주 희망자가 줄어드는 원인을 잘 이해해야 한다. 실버타운은 노인 주거형태의 하나다. 아파트 생활에 지친 도시 거주자가 새로운 주거 환경으로 가려고 해도 막상 대안이 별로 없다.
 
특히 노인을 위한 마땅한 주거형태가 없다. 전원주택을 지어 교외로 나가는 것도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니다. 막상 간다고 해도 나이가 더 들면 여러 가지로 불편해질 것 같아서 불안하다. 특히 의료시설이 문제다. 노인에게 새로운 자연환경이 위험할 수 있다. 지방 소멸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으니 지역 선택도 신중히 해야 한다. 원주민과의 관계는 더 걱정이다.
 
이러한 불안 요소를 어느 정도 해소하면서 공동체 주거의 장점도 접목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 실버타운이다. 부도덕한 실버타운 사업자의 반성과 도덕성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시급한 것은 보증금을 확실하게 돌려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가 우려된다면 그 시설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입주할 수 없다. 실버타운이 1인 가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이 시대 노인들의 공동체 주거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
 
손웅익 건축가 badaspa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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