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학년 하교 늦추자" 저출산위 제안, 학부모ㆍ교사 생각은…

중앙일보

입력 2018.08.30 06:00

수정 2018.08.3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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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1학년 딸을 둔 김모(35‧서울 가락동)씨는 이번 달부터 회사 업무가 끝나면 눈썹이 휘날리게 지하철을 타러 달려간다. 아이와 같은 반 친구의 엄마가 돌보고 있는 딸을 데리러 가기 위해서다. 
그는 집에서 20분 거리에 살면서 아이를 돌봐주던 친정엄마가 이달 초 허리를 다치면서 혼자 아이를 책임지게 됐다. 
김씨는 “학교 내 돌봄교실은 경쟁률이 높아 선정되지 못했고, 남편은 야근이 잦은 직업이라 친정엄마가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 애를 돌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저출산이 문제’라고 떠들지만 말고 엄마들이 맘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4일 오후 서울 성동구 경동초등학교를 방문, 온종일 돌봄 정책 간담회를 하기 앞서 독서활동을 하고 있는 돌봄 교실을 방문해 어린이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초등 저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중에는 김씨처럼 방과 후 자녀를 맡길 곳이 없어 난감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다.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김씨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퇴근 때까지 아이를 맡아줄 곳이 마땅찮아 어쩔 수 없이 ‘학원 뺑뺑이’를 선택하는 직장맘이 대부분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는 최근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의 하교 시간을 일원화하는 ‘더 놀이학교’(가칭)를 제안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놀이와 활동시간을 늘려 고학년처럼 오후 3시에 하교토록 하는 게 핵심이다. 
초등 저학년은 현재 오후 1시 안팎으로 하교하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의 경우 오후 6시에 ‘칼퇴근’ 해도 최소 5시간의 돌봄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

저출산위 28일 제안에 학부모·교사 의견 엇갈려
학부모들 "여성 사회 활동위해 필요한 제도"
교사들 "학생 수 많아 제대로 돌보기 어려워"
전문가 "교사 수 확충 등 제도개선 우선돼야"

학부모와 교사들은 엇갈린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학부모들은 “저출산을 해결하고 여성의 사회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찬성한다. 교사들은 “현장을 제대로 모르는 정책”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학부모 중에서도 양육에 더 많이 신경쓰는 엄마들은 대부분 환영하는 분위기다. 
초등 1, 2학년 자녀를 둔 직장맘 이모(40·서울 마천동)씨는 “현재 같은 상황에서는 부모님이나 베이비시터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며 "놀이학교뿐 아니라 온종일 돌봄교실도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 1학년 아들을 둔 성모(36·서울 풍납동)씨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 지면서 어린이집은 하루 12시간 넘게 운영되는 곳도 있는데, 초등 저학년은 왜 오후 1시면 하교하게 돼 있는지 모르겠다"며 “미취학 때보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에 일하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교사들은 저학년 하교 시간 연장이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관악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게 직장맘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지 몰라도 아이들의 인성 함양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린이집과 달리 교사들은 1인당 돌봐야 할 아이 수가 많아 제대로 된 돌봄이 이뤄질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홍소영 서울 고덕초 교사도 저출산위가 개최한 포럼에 참석해 “초등학교 저학년은 부모와 애착이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부모가 일찍 퇴근해 아이들과 정서적 교감을 갖는 시간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학교는 교육기관으로 학부모 만족도를 높이고 보육은 지자체의 역할을 강화해 마을 자원이나 환경을 놀이 공간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사 수 확충 등 제도개선이 선행되지 않고는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서울 사립대의 교육학과 교수는 “현재도 초등 저학년 담임에 대한 선호가 낮은 상황인데 돌봄시간까지 늘어나게 되면 저학년 담임 기피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에 대한 제도 마련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초등 저학년이 오후에 하교해도 정시퇴근이 힘든 현실이 개선되지 않으면 별다른 소용이 없다”며 “정시퇴근이나 유연 근무를 보장해 주도록 기업문화가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