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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아이돌 장학금이 불편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8.08.2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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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윤 교육팀장

한 아이돌그룹 멤버 4명이 8년 전 전남의 한 사립대에 동시 입학해 4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최근 논란이 됐다. 이들은 가수 활동으로 바쁜 데다 학교가 멀어 사실상 수업 출석이 어려운 상태였다. 그런데도 별일 없이 졸업했고, 더욱이 4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는 게 일반의 분노를 샀다. 아이돌 그룹 소속사는 “학교 명예를 높인 것에 대해 장학금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아이돌들에게 가지 않았다면 이 장학금은 형편이 어려워 장학금이 정말 절실한 학생에게 돌아갔을 수 있다. 대학 관계자들에 따르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의외로 많다. 서울의 주요 대학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저처럼 가진 것 없는 사람이 고개 숙여 발끝만 보고 살게 해준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를 꿈꿀 수 있게 해준 장학금 기부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10원도 헛되이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1학기 고려대에서 ‘글로벌희망 교환학생’으로 선발된 한 학생이 학교 측에 한 인사말이다. 교환학생은 자기 대학에 등록금을 내면 자신이 가고자 하는 외국 대학에 추가로 학비를 내지 않는다. 다만 항공료와 현지 생활비는 자기가 부담한다. 이 대학 유병현 대외협력처장 겸 기금기획본부장은 “항공료와 현지 생활비를 댈 여력이 안 돼 교환학생 신청 자체를 엄두도 못 내는 학생이 정말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고려대가 교환학생에게 항공료와 생활비를 최대 1000만원까지 지원하는 장학금을 신설한 배경이다.


이 장학금을 받은 다른 학생은 “저도 졸업하고 장학금을 기부해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을 돕는 꿈이 생겼다”고 했다.
 
장학금은 청년의 꿈을 키워 주는 제도다. 1960년대 이후 북미·유럽 등지로 유학 갔던 한국인 유학생들도 해당 국가 혹은 대학의 장학금 덕분에 공부를 마쳤다.
 
한·중·일 3국 정부가 2011년 이후 시행 중인 학생교류 프로그램인 ‘캠퍼스 아시아’를 통해 타국 문물을 경험한 한·중·일 학생이 2000명을 넘어섰다. 지난 주말 이 프로그램 덕분에 외국 대학에서 복수 학위도 받고 어엿한 사회인이 된 25~33세 한·중·일 청년 30여 명이 워크숍을 열었다. ‘지식 가능한 도시와 공동체를 위한 청년 혁신 프로젝트’가 워크숍 주제였다. 지금은 학생 신분을 벗어나 투자회사 컨설턴트, 국책연구기관 연구원, 정부 부처 공무원들이 됐다. 장학금 혜택을 본 만큼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자는 취지에서 내디딘 첫발이 워크숍이었다. 이런 것이 장학금의 효과다.
 
대학을 홍보해 준다는 이름으로 아이돌에게 돌아간 전액 장학금은 그래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성시윤 교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