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진 그저 그런 정치사(史)이지만 스토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 나섰던 사람들의 면면 때문이다.
정 후보와 맞붙어 패한 이가 이해찬ㆍ손학규 후보였다. 11년이 지난 지금, 세 사람이 다시 여의도 정치권에 등장하더니 속속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미 두 사람은 당 대표고, 한 사람은 유력한 대표 후보다.
25일 치러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해찬 대표는 송영길ㆍ김진표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넉넉하게 앞섰다. 앞서 민주평화당은 지난 5일 전당대회를 통해 정동영 대표 체제를 갖췄다. 다음 달 2일엔 바른미래당 전당대회가 열리는데, 손학규 후보가 다른 후보를 앞서고 있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손 후보마저 대표가 될 경우, 한 당의 대선 후보가 되려 경쟁했던 세 사람이 11년 만에 여야 정당의 대표로 다시 마주하게 된다.
현재 제1야당을 이끄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세 사람과의 인연이 있다. 특히, 이 대표와의 관계가 각별한데 2004년 6월~2006년 3월 이 대표가 ‘책임총리’로 내각을 이끌 당시, 김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정책실장(2004년 6월~2006년 5월)으로 호흡을 맞췄다. 숫제 ‘노무현 정부의 아우라’가 그대로 재현되는 모양새다.
2007년 뉴스의 중심에 섰던 네 사람의 이름이 11년 뒤에 다시 등장하는 것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정두언 전 의원은 “노령화 사회로 가는 부작용”이라고 혹평했다. “후진을 키워내지 못하는 척박한 정치 토양을 그대로 드러내는 장면”이란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어찌 됐든 이들은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내는 전통적 의미의 ‘정치’를 아는 인사들이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26일 페이스북에 “이해찬 민주당 신임 당 대표의 당선을 축하한다. 한국 정치의 틀을 바꾸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 분명한 의지를 밝혀주시기 바란다”고 썼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의 사석에서 “나이가 들었지만, 이 대표는 여전히 명민하다”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