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앙코르! 앙코르!"
21일 오후 발라드 그룹 V.O.S의 콘서트가 열린 롯데백화점 대구점 7층 문화홀. V.O.S가 대여섯 곡의 노래를 모두 부르고 무대 뒤로 사라지자 4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앙코르 요청이 이어졌다.
다시 등장한 V.O.S는 앞선 무대와는 전혀 다른 의상을 입고 나왔다. 갈색 선으로 그려진 벚꽃이 패턴을 이룬 티셔츠였다. 무대 위에 걸린 현수막이나 무대 스크린에 공연 내내 표시돼 있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V.O.S 콘서트 수놓은 나영이의 패턴 디자인
V.O.S의 리더 박지헌씨는 티셔츠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며 "대한민국 최고의 디자이너가 될 나영이가 만든 티셔츠"라고 소개했다. 그는 "나영이가 지금 비록 몸이 아프지만 디자이너라는 꿈을 갖고 있다"며 "좋은 뜻으로 이 티셔츠를 입게 됐는데 저희 잘 어울리나요"라고 물었다. 관객석에서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하얀 티셔츠에 새겨진 이 디자인은 만 5세 때부터 '척수성근위축증'이란 병을 앓고 있는 권나영(16)양의 작품이다. 척수성근위축증은 근육이 점점 약해져 거동이 불편해지고 나중엔 자발 호흡이 어려워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하는 희귀병이다. 아직 치료 방법이 없어 상태가 악화되지 않게 관리할 수밖에 없다.
그림 즐겨 그리는 16세 소녀 "디자이너가 꿈"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평소 그림을 즐겨 그리는 나영 양의 꿈은 '캐릭터 디자이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거나 몸 상태가 좋지 못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면 자리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곤 했다. 찰흙으로 아기자기한 캐릭터도 자주 만든다. 하지만 앓고 있는 병 때문에 진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이 소식을 접한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이 나영 양을 위해 특별 이벤트를 마련했다. 메이크어위시(make-a-wish)재단은 난치병 아동·청소년의 소원을 들어주는 비영리 단체다. 한국지부가 2002년 설립돼 지금까지 4000여 명의 아동의 소원을 이뤄줬다.
재단은 롯데백화점 대구점과 힘을 합쳤다. 21일 예정된 V.O.S 공연을 나영 양이 직접 디자인한 벚꽃 패턴으로 가득 채웠다. 공연 현수막, 무대 스크린, V.O.S가 입고 무대에 오른 의상은 물론 관객들이 하나씩 선물 받은 에코백에도 나영양의 디자인이 담겼다.
이날 V.O.S 콘서트장을 찾은 나영 양은 경북대학교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공연을 보기 위해 잠시 외출했다. 오래 앉아 있기 힘들어 특별히 제작된 휠체어에 앉은 채였다. 어머니와 오빠가 동행했다. 제대로 무대가 갖춰진 콘서트는 나영 양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나영 양은 평소 유튜브를 통해 바깥 세상을 접한다.
이번 공연 계기로 보다 건강해졌으면
공연을 모두 마친 V.O.S는 무대 뒤 대기실에서 나영 양 가족과 만났다. 나영 양은 멤버들에게 "고맙다"며 에코백을 하나씩 나눠줬다. 메이크어위시재단 측은 나영 양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신상 태블릿PC를 선물로 증정했다.
나영 양의 어머니 김선희(51)씨는 "몸이 점점 안 좋아지는 병이기 때문에 매일 '내일도 오늘만 같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낸다"며 "오늘 공연을 계기로 나영이가 힘을 내 보다 건강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