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의 대입종합학원에서 한국사 1타(최고 인기) 강사로 활약하던 K씨는 3년 전부터 공무원 준비 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학령인구 감소, 수시 확대, 문과 기피 등으로 수능 학원의 수강생이 줄자 공무원 학원으로 옮겼다. K강사는 “상당수 학생이 ‘고등학교 때 선생님 강의 들었다’고 인사해 와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한국사는 서울대 필수 과목이라 상위권 학생들이 주로 들었다”면서 “고3 때 상위권이었던 제자들조차 대학 졸업 후 노량진으로 몰려 오는 걸 보면 착잡하다”고 털어놨다.
대학 가도 편입·취업 스펙 쌓으려
4050은 인생 2막 준비 위해 학원행
수능학원은 공시·로스쿨 사업 확대
"현실 불안이 사교육 의존도 높여
실패 용납 않는 사회 구조 바꿔야”
설령 취업에 성공해도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진 않는다. 직장에 다니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이 모(여·33)씨는 “대기업에 들어가도 소모적인 업무만 할 뿐 성취감·안정감 모두 느끼기 어렵다”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놓는 것이 더 불안하다”고 말했다.
교육업계는 이 같은 수요를 쫓아 수능 대비에서 성인 시험 시장까지 사업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대입전문학원인 스카이에듀를 운영하는 교육기업 ST유니타스는 공무원단기학교(공단기)를 운영하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흡수했다. 최근에는 공인중개사단기학교(공인단기)를 열고 공인중개사 시험 대비도 시작했다. 메가스터디도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인 LEET를 준비하는 메가로스쿨, 약학대학 입학시험인 PEET 대비를 위한 메가엠디를 자회사로 운영하고 있다. 또 김영편입학원을 인수해 편입 시험도 대비한다.
성인이 된 뒤에도 사교육 의존도가 줄어들지 않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럽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선 볼 수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인들이 사교육에 지속적으로 의존하는 이유는 결국 불안정한 현실을 안정화시키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하며 “이는 국가·지자체 등 사회가 담당해야 할 재교육 혹은 계속 교육에 대한 책임을 방기해, 결국 개인이 사교육 시장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에 나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실패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한국 사회의 특징이 전 국민을 평생 사교육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단순히 사교육 과열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