샀다하면 1000억, 1조원…중국 IT공룡들, 동남아 정복하고 세계로 간다

중앙일보

입력 2018.08.15 16:35

수정 2018.08.1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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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는 이미 정복하고 세계 시장으로 간다’.
중국 정보기술(IT) 공룡들 얘기다. 샤오미ㆍ화웨이 같은 회사로 대표되던 하드웨어 제조업이 아니라 게임ㆍ영화ㆍ결제ㆍ동영상 등 다양한 IT 서비스가 기반이다.
 
인도네시아 정보통신부는 지난달 초 “10대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며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에 대해 접속금지 조치를 했다가 일주일 뒤에야 해제했다. 틱톡을 서비스하는 ‘바이트댄스’가 앞으로 문제 동영상을 모니터해 삭제하기로 한 후에야 접속 차단을 풀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틱톡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틱톡 이용자는 전 세계적으로 약 5억 명이다.

틱톡

중국 IT 서비스는 동남아를 이미 거의 장악했다. 바이두(포털)·알리바바(전자상거래)·텐센트(메신저와 게임) 등 일명 BAT로 불리는 중국 IT 공룡들은 동남아 IT를 지배하는 현지 회사 지분을 대부분 갖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20년까지 연평균 5% 이상의 경제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는 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ㆍ필리핀ㆍ태국ㆍ베트남이 이들의 주 공략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츠'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급속도로 늘고 있고, 젊은 인구가 많은 데다가, 신용카드 등이 자리 잡지 않은 현금 사회란 점이 중국 IT업체엔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푸슈융 텐센트 부사장은 외신 인터뷰에서 “텐센트가 중국에서 배운 노하우를 가장 빨리 적용할 수 있는 시장이 동남아”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이 동남아 시장에 퍼붓는 돈의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알리바바는 동남아 전역이 무대인 전자상거래 기업 ‘라자다’ 지분을 83%까지 늘리는데 약 10억 달러(약 1조1300억원)를 들였다. 아·태지역 최대 규모 인수·합병(M&A)이다. 알리바바는 최근엔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 기업 ‘코토피디아’에도 5억 달러(약 5600억원)를 투자했다.


텐센트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차량공유 서비스 ‘고젝’에 1억 달러(약 1100억원)를 넣었다. 텐센트는 또한 필리핀에서 서비스 중인 온라인 교육업체 ‘ABC360’과 태국의 ‘우카비 U’, ‘사눅’ 에도 상당한 지분을 투자했다. 징둥닷컴(전자상거래)과 디디추싱(차량공유서비스)도 최근 동남아 M&A 대열에 뛰어 들었다. 징둥닷컴은 인도네시아 여행사이트 ‘트레블로카’에 최소 1억5000만 달러(약 1700억원)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동남아 시장을 장악하는 방식은 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미국 IT 공룡들과는 다르다. 이미 시장에 안착한 현지 업체들을 거액을 들여 인수ㆍ합병(M&A)한다. M&A후 중국 색을 뺀 서비스를 현지 맞춤으로 내놓아 시장을 장악한다. 이렇게 판을 키우고 투자를 받아 또 다른 회사를 먹는 구조다. 미국식 또는 글로벌 공통 서비스를 그대로 내놓는 미국 업체들과 대비된다. 고젝을 운영하는 텐센트, 틱톡을 운영하는 바이트댄스, 알리페이를 운영하는 알리바바 앤트파이낸셜 등이 이런 전략을 구사한다.
 
중국 IT공룡들은 이미 동남아를 넘어 세계 시장 정복에 한걸음 다가섰다. 텐센트는 이미 동남아를 넘어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투자자로 등극했다. 그가 세계 최대로 꼽혔던 미국 실리콘밸리의 세콰이어 캐피털이 지금까지 13개의 유니콘 기업을 키워낸 데 비해 텐센트는 19개 유니콘 기업을 키워낸 것이다.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를 넘어선 스타트업)에서 미국외 회사 비중이 50%에 달했다. 2014년 37%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중 대부분은 중국 기업이거나, 중국 기업이 투자한 회사들이다.

틱톡을 쓰는 글로벌 이용자들이 올린 영상. [사진 바이트댄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경우 시장서 성공한 모델을 현지화해 해외로 나가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완전히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차 위원은 “얼굴 인식, 빅데이터 활용이나 인공 지능 분야 등의 앞선 기술, 느슨한 규제, 전폭적인 중국 정부 지원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비하면 국내 업체들의 해외 공략은 걸음마 수준이다. 네이버와 일부 게임 업체들을 제외하곤 아시아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해외 시장 공략의 스케일이 중국 기업과 다르기도 하지만, 초기부터 글로벌 현지화 전략이 미흡한 점도 큰 요인이다. 
 
네이버는 아시아 지역에서 자리 잡은 메신저 서비스 ‘라인’을 잇는 후속작을 고민하고 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달 2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동영상 서비스 ‘브이라이브’, 카메라 앱 ‘스노우’, ‘네이버웹툰’이 차기 글로벌 주력 사업”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브이라이브는 2분기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수가 5500만 건을 돌파했고, 네이버웹툰은 글로벌 월 실사용자 수가 500만 명을 넘었다. 괜찮은 실적이긴 하지만 성공한 중국 IT 서비스에 비하면 사용자 규모가 크다고는 할 수 없다. 인공지능(AI) 기반 검색 기술을 개발하는 '서치앤클로바'와 블로그ㆍ지식인 등 사용자제작콘텐트(UGC) 서비스를 개발하는 '아폴로셀' 조직이 신규 해외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서치앤클로바는 조만간 일본 검색 시장을 목표로, 아폴로셀은 하반기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새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엔씨소프트(리니지)와 넥슨(메이플스토리)ㆍ그라비티(라그나로크) 등 국내 게임 업체들이 대만 등 아시아 지역에서 그나마 일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모바일 게임 ‘메이플스토리M’은 지난달 대만ㆍ싱가포르 앱스토어에서 인기ㆍ매출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말레이시아ㆍ태국ㆍ베트남 등에서도 인기다. ‘리니지M’은 지난해 12월 대만 게임 시장에 출시한 뒤 구글플레이ㆍ애플 앱스토어 양대 매출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최지영ㆍ하선영 기자 choi.ji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