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이 말라 죽거나 생기가 없어지는 현상을 가리켜 ‘시듦병’ ‘시듦 증상’으로 표기하는 것에 대해 낯설다는 이가 적지 않다. 입말도 마찬가지다. ‘시듦’보다 ‘시들음’이 더 익숙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토마토가 시들음병으로 고사했다” “채소는 강한 햇볕이 지속되면 시들음 증상과 병해충의 위험이 높아진다”처럼 쓰는 경우가 많다. 이 ‘시들음’의 올바른 표기법은 ‘시듦병’ ‘시듦 증상’이다.
‘시듦’을 ‘시듬’으로 적는 경우도 있다. ‘무르다’ ‘마르다’의 명사형은 ‘무름’ ‘마름’이 맞지만 ‘시들다’의 명사형은 ‘시듬’이 될 수 없다. 어간이 ‘ㄹ’ 받침으로 끝나는 용언의 명사형을 만들 때 저지르기 쉬운 실수다. ‘ㄹ’을 맘대로 생략해선 안 된다. 어간의 ‘ㄹ’을 살려 줘야 한다.
용언(동사와 형용사)을 명사형으로 만드는 법칙은 어렵지 않다. 받침의 유무에 따라 어간에 명사 구실을 하게 하는 어미 ‘-ㅁ’ 또는 ‘-음’을 붙인다. 용언의 어간에 받침이 없을 때는 ‘-ㅁ’을 붙이면 된다. 돌리다는 ‘돌림(←돌리-+-ㅁ)’, 열리다는 ‘열림(←열리-+-ㅁ)’이 되는 것이다. 용언의 어간에 받침이 있을 때는 ‘찾음(←찾-+-음)’ ‘썩음(←썩-+-음)’과 같이 ‘-음’을 붙여 명사형을 만든다.
문제는 용언의 어간이 ‘ㄹ’ 받침으로 끝나는 경우다. 용언의 어간에 받침이 없을 때와 마찬가지로 ‘-ㅁ’을 붙여 명사형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쉽다. 낯설다는 ‘낯섦(←낯설-+-ㅁ)’, 만들다는 ‘만듦(←만들-+-ㅁ)’, 줄다는 ‘줆(←줄-+-ㅁ)’, 힘들다는 ‘힘듦(←힘들-+-ㅁ)’이 된다.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하면서 ‘ㅁ’이 받침으로 흡수되는 원리다. 한글맞춤법 제19항에 따라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어야 하므로 ‘낯섬’ ‘만듬’ ‘줌’ ‘힘듬’과 같이 ‘ㄹ’을 생략하고 표기하면 안 된다.
이은희 기자 lee.eunhee@j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