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만 있고 가족은 없는 삶 과감히 뿌리치다

중앙일보

입력 2018.08.09 12:00

수정 2018.11.0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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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환승샷(55) 대기업 직장인에서 산골 촌부로, 이정복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과거 삼성SDI 부산 정보파트에 근무했던 모습. 당시 삼성 SDS 사장이었던 김인 사장님과 함께. [사진 이정복]

 
지방에서 국립대학을 졸업한 저는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명함만 내밀면 “좋은 회사 다니시네요”라는 많은 이의 부러운 대답을 듣던 탄탄한 회사에 ‘나의 길을 찾아서’라는 출사표를 내던지게 된 무모한 동기는 이러했습니다.
 
직장에서의 연차가 높아질수록 업무량과 무게는 점점 가중되다 보니 절반 이상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되어 가더군요.
 
가족과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 역시 현대의 직장인이라면 ‘당연한 정답’처럼 여기게 되고요. 삶을 살기 위한 방편으로 회사에 다니는 것인지 회사에 다니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 그 경계가 희미해질 만큼 저의 생활은 회사에 압도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행복한 가정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함께 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시간 아내와 함께 상의하고 토론해 얻은 그 ‘함께 함’의 방향성에 대한 결론은 안락했던 도시의 모든 것을 반납하고 ‘두메산골로의 귀촌’이었습니다.


(왼쪽부터) 텃밭의 감자를 수확하는 날 아침의 풍경. 땅속에서 커다란 감자가 나오니 아이들이 신기해 어쩔 줄을 모른다. 봄날에 오디를 따러 갔을 때의 사진. 시골엔 건강식품인 자연산 오디가 아주 많다. [사진 이정복]

 
그렇게 우리 부부는 세 아이를 데리고 새로운 삶을 펼칠 곳을 찾아 지금 이곳에 새로운 뿌리를 내렸습니다. 계절 따라 변화무쌍한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가족 모두 서로 삶을 지켜봐 주고 보살피며 행복하게 함께 살아온 시간이 어느새 7년이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의 참관수업. 한 학년이 3명으로 1학년에서 6학년 될 때까지 항상 1반이며, 같은 반 아이들로 구성된다. [사진 이정복]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기꺼이 치른 대가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남다른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가 이곳 산골에서 아내와 그리고 세 아이와 함께했던 지난 7년 동안의 시간은 상상으로만 꿈꾸던 행복보다도 훨씬 큰 행복감을 주었고 그 시간의 가치는 나머지 삶 전체를 내어주어도 하나 아까울 것 없는 소중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위에서 왼쪽부터) 아내와 외장 마감재인 시멘트사이딩을 부착하다가, 고운 하늘을 누워 감상하는 모습을 아들이 찍었다. 막내 딸과 외장 마감을 위한 페인트 칠할 때의 모습. 외장 마감을 마무리한 새 집. [사진 이정복]

 
요즘 저는 ‘우리 집’을 짓고 있습니다. 짬짬이 아내와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온 가족이 함께 살 집을 온 가족이 함께 짓고 있는 셈이지요. 죽으라고 머리만 쓰고 제대로 몸 쓰지 않게 살던 저에게 처음 해 보는 집짓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만 내 손으로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지고 완성되어 가는 집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육체의 고단함쯤은 눈 녹듯 사라집니다.
 
매일 조금씩 조금씩 10개월의 시간을 거쳐 성실하게 외장까지 작업이 끝나 제법 그럴싸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우리 집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의 부러운 눈빛에 으쓱해지는 어깨를 숨기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제 삶에 또 한 번의 힘찬 경적이 울리고 있습니다. 지금 타고 있는 열차에 그대로 몸을 내맡길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곳을 향해 기꺼이 환승을 시도할 것인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입니다. ‘처음’ 환승은 무척이나 힘든 시도였으나 환승을 통한 새 삶에 맛을 본 한 사람으로서 제2의 환승이란 그저 즐거운 삶의 여정쯤으로 여겨진다면 지나친 허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