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이 처음 불거진 건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이 제출한 연례보고서 수정본을 통해서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10월 북한산 석탄 9000여t이 러시아를 통해 한국에 반입됐다고 전했다. 원산항과 청진항에서 석탄을 싣고 온 북한 선박이 러시아 홀름스크항에 하역했으며, 이때 북한 석탄이 러시아산으로 ‘바뀌어’ 인천과 포항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관세청, 한전 자회사 남동발전 조사
남동발전 “수입 증명서에 러시아산”
수십차례 입출항 했는데 조치 없어
당국 조사 결과 발표 지연도 의문
하지만 석탄 공급선에 대한 기본 정보조차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했다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대형 발전공기업이 무역중개업체만 믿고 ‘깜깜이 거래’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중개 역할을 한 해당 중개업체는 다른 국내 기업에도 석탄을 공급한 이력이 있어 불법 유입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둘째는 해당 선박에 대한 조치다. 지난해 말 유엔 결의 2397호가 채택된 후에 문제의 외국 선박들이 수십 차례 우리 항만을 오갔는데도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제재 위반이 의심되는 선박을 억류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규정이 없어 출항을 허가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선박 모두 입항 전 수입신고를 한 까닭에 배가 도착한 동시에 하역 처리가 이뤄져버렸다. 통관 절차 후 석탄은 국내에 바로 풀렸다. 정부 관계자는 “설사 북한산 석탄을 운송했다고 확인해도 해당 선박을 나포·수색할지 여부는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해당 선박들이 중국·러시아 등 외국 국적이라 외교적 갈등을 꺼렸다는 해석도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 등에서는 정부의 대북제재 이행 의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강도 높은 대북제재에 나서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대북제재를 깨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됐다는 것이다.
셋째는 관세청의 결과 발표 지연이다. 정부는 관련 선박들의 북한산 석탄 운송·반입 의혹을 인지한 지 10개월 가까이 지나도록 공식적인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대북제재를 의도적으로 어겼다’는 식의 음모론이 퍼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재일 관세청 조사임시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해당 수입 업체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혐의자의 휴대전화 포렌식(최첨단 기법 범죄 수사) 등을 진행 중”이라며 “관련 업체가 많고 관련자들이 진술을 부인하고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아 조사가 지연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일을 겪은 호주는 경우가 다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호주 정부는 지난해 8~9월 자국 기업인 브릭트 오스트레일리아가 북한산 석탄의 원산지를 러시아로 속여 베트남 등으로 수출한 혐의를 포착했고, 즉각 유엔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조사에 착수했다. 해당 사례는 올해 3월 유엔 비공개 보고서 문건에 담겼다. 이 회사는 올해 초에도 북한에 미사일 부품을 밀수출하려다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서유진·장원석 기자 suh.yo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