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는 올해만 32대째 화재가 발생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초유의 사태다. BMW가 부품 결함을 인정한 후에도, 국토부가 ‘운행 자제’를 권고한 후에도 불은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길에 세워진 BMW만 봐도 불안할 정도다. 주차장에 붙은 ‘BMW 출입금지’ 경고문 역시 실재하는 공포다.
분노의 불길은 차를 넘어 BMW의 ‘늑장 리콜’ 의혹과 국토부의 허술한 대응으로 번지고 있다. 우선 리콜 결정 한참 전부터 화재가 시작됐기 때문에 BMW가 화재 원인을 알고도 숨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7년 초부터 BMW코리아가 위험 보고서를 독일 본사에 수차례 전달했는데 본사가 이를 받고도 근본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 4월 환경부가 BMW 일부 차종의 EGR에 대해 리콜한 적이 있음에도 국토부가 제대로 살피지 않아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목포서 또 화재, 올해만 32대째
국토부 “민간 참여 원인조사” 뒷북
문제된 EGR 환경부서 넉 달 전 리콜
“국토부서 제대로 안 살펴 사태 키워”
그러나 억울함을 말하기엔 BMW와 국토부의 대응이 너무 안이했다. 국내 소비자들은 지난 몇 년 동안 BMW를 수입차 판매 1위 회사로 만들어줬고 덕분에 BMW는 막대한 돈을 벌었다. 그런데 미리 결함을 경고하거나 피해를 줄이지도 못했다.
더 심각한 건 국토부다. 국토부는 사태가 이처럼 커지기 전에 미리 상황을 파악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유가 달랐다 해도 같은 정부 부처에서 이미 몇 달 전 리콜을 진행했던 부품이다. 또한 리콜 결정 이후 브리핑에선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10개월이 걸린다”는 안이한 말로 분노를 키웠다. 게다가 사후 조치인 안전진단마저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했다. 국토부는 5일 뒤늦게 불이 난 차량을 안전진단했다는 센터로 담당자를 ‘급파’해 실태 조사를 했다. 역시 소비자의 공포를 부추기는 뒤늦은 사후 조치다.
국토부는 지난 3일 발표한 김현미 장관 명의의 입장문에서도 책임을 미루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BMW에서도 경각심을 갖고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할 것을 촉구한다”며 “조사에 필요한 관련 부품 및 기술자료 등 모든 자료를 빠짐없이 신속하게 제공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관리·감독과 인증, 규제 등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쥔 국토부가 이미 전국 각지에서 차 화재가 발생한 상황에서, 그것도 대국민 입장문에서 BMW에 자료를 빠짐없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자동차 업계에 수퍼 갑의 권한을 휘둘러 온 국토부가 자료조차 온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인지, BMW가 협조를 제대로 안 해준다고 핑계를 대는 것인지 의도를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불안에 떨고 있는 BMW 520d 차주 박모(35)씨는 “기업이 잘못했을 때 소비자가 기댈 곳은 정부밖에 없는데 지금까지 국토부가 한 일은 대안 없는 운행 자제가 고작”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