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첫 방송 이후 6회분까지 방영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최고의 승자는 아무래도 김태리(28)인 듯하다. 조선 최고 사대부 집안의 귀한 딸 고애신 역할을 맡은 그는 가마를 타고 다니는 순진무구한 표정의 ‘애기씨’부터 담벼락 정도는 휙휙 넘어 제치며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명사수’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첫 드라마 도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연기다.
첫 드라마 도전한 배우 김태리
이병헌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 과시
데뷔작 '아가씨'서 보여준 신뢰감에
밸런스 갖춘 연기로 팽팽함 불어넣어
이는 멀티캐스트 추세가 점점 더 강화되는 시점에 배우로서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다섯 인물이 줄다리기를 펼치는 가운데 한 명만 끈을 놓쳐도 극의 긴장감은 현저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중 한명이 과해서 튀어 보이거나 덜해서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배우 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전체 팀으로서도 마이너스다. 쟁쟁한 배우들이 총출동해도 정작 결과물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부담될 법도 한데 김태리는 ‘미스터 션샤인’ 제작발표회에서 “연기하면서 그보다 더 축복일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배들을 못 따라가면 어떻게 하지”란 걱정은 있어도 제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없는 것이다.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은 하는 대담함”이라는 박찬욱 감독의 평가나 “나이에 걸맞지 않은 기특하고 정돈된 생각”이라는 장준환 감독의 칭찬 역시 같은 맥락이다. 첫발을 떼지 않았으면 모를까 한 번 뱉은 말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질 줄 아는 배우란 뜻이다.
‘노출 수위 협의 불가’라는 파격적 조건에도 ‘아가씨’의 숙희 역을 받아든 것 역시 그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연기가 노출신에 묻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숙희의 순진함 혹은 농염함이 자신을 대표하는 얼굴로 굳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말이다. 올 초 150만 관객을 동원하며 깜짝 흥행에 성공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이는 거의 확증에 가깝다. 누가 몸빼바지를 입고 농사일을 하는 혜원을 보고 ‘아가씨’의 숙희를 떠올리겠는가.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겨울을 겪은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는 그녀의 내레이션은 오랫동안 마음을 붙든다. 스물여섯이라는 비교적 늦은 데뷔에 대해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의 생각과 소신을 가지고 있을 테니 어릴 때 시작하는 것보다 메리트가 있다”는 그녀의 지론과 일치한다. 아마 ‘미스터 션샤인’이 끝날 때쯤이면 또 하나의 명대사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그녀에게 꼭 맞는 걸로 말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