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가 다 좋은 건 아니다. 1분기엔 소폭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뜨뜻해진 현장과는 다소 괴리감이 있다. 그래서인지 경기 회복에 긴가민가해 하는 사람도 제법 있다.
일본 장·단기 경기곡선 일제 상승
2024년 이후 장기호황 예측 나와
한국은 방향성 못 잡고 우왕좌왕
궤도 수정 안하는 건 풍토병인가
실제 아베노믹스 경기는 이어지고 있다. 기간으론 1965년 10월~1970년 7월의 ‘이자나기 경기’, 2002년 1월~2008년 2월의 ‘이자나미 경기’를 넘어섰다. 물론 경제가 쑥쑥 커졌다는 뜻은 아니다. 선진국에서 고도성장은 바랄 수 없다. 경제가 오랜 결빙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며 정속 주행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도 방향성은 확고했다. 잘못된 방향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실무진에겐 수습할 일들이 폭주한다. 우리 관료들, 참 바쁘게 일한다. 후유증·부작용 해결책 짜느라 여념이 없다. 두더지 잡기식 처방쯤은 뚝딱 만들어낸다. 경제라는 배의 선장을 맡은 분도 항해 전략에 대한 고민보다 물 새는 곳 틀어막기에 바쁘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외면한다.
이러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데도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며칠 전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 정책의 궤도 수정 없이 항해하는 것은 자해행위다”고 말했다고 보도됐다. 그 말 역시 정부 귀에 제대로 전달됐을지 의문이다.
왜 안 바꾸고, 왜 안 바뀌는 걸까. 단순히 무능하다고만 보기엔 증상이 좀 심하다. 우선 떠오르는 가설은 집단사고다. 비슷한 생각을 지닌 이들끼리 청와대에 모여 ‘우리가 옳다’는 환상에 젖어서일 수 있다. ‘무오류의 환상’은 유능하기 때문에 더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둘째, 경직된 근본주의다. 자신의 생각이 합리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울 때도 이를 정치적 신념으로 고수하려는 고집불통의 자세다. 높은 지지율 속에서도 ‘밀리면 진다’는 전투심리마저 감지된다. 경제문제를 풀 때엔 유연한 실용주의가 유리한데, 참 딱한 일이다.
셋째, 권력의 자장(磁場) 탓일 수 있다. 평소 멀쩡하던 분도 권부에 들어가면 변한다. 나침반이 극점 가까이에서 오작동하듯 말이다. 교수 출신의 전임 경제수석이 그랬다. 편의적인 통계로 ‘긍정효과 90%’ 논란을 불렀다. 그냥 교수였다면 그런 리포트를 낸 학생에게 F를 줬을 텐데, 굳이 틀린 게 아니라 하잖나.
넷째, 이 정부가 열렬한 서포터들에게 포획당했는지도 모른다. 무슨 무슨 거룩한 이름의 단체들이 한 말씀 하면 반응을 곧잘 한다. 때로는 권력이 하이재킹당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자신이 없어서인가, 한통속이어서인가, 뭔가 빚을 져서 그런가. 이도 저도 아니면 그 모든 게 뒤섞인 풍토병일 수 있다. 이게 좌파 정권만의 고질병은 아니다. 권력의 역량과 비전에 따라 피해갈 수도, 걸릴 수도 있다. 불행히도 지금은 심하게 걸린 듯하다.
적어도 현 시점에서 우리 경제는 일본에 비해 위태위태해 보인다. 땀 흘려 일하는 분, 일자리 만들며 사업하는 분보다 여기저기 참견이나 하는 건달들이 더 설친다. 경제 주체가 각자의 생업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2%대 후반의 성장률이 전 정부에 비해 뭐가 나쁘냐는 항변은 안 먹힌다. 경제 주체들이 민감하게 느끼는 건 흐름이다. 어디론가 잘못 가고 있다, 배가 기울고 있다…. 그런 불길한 추세적 느낌 말이다. 일본의 성장률은 우리보다 낮지만 추세가 긍정적이다. 게다가 앞으론 더 좋아진다고 하지 않나. 옆집엔 경사가 났다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썰렁하게 지내야 하나.
남윤호 도쿄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