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원가 공개 카드를 꺼낸 이유는 두 가지다. 원가를 공개해 소비자가격을 내리겠다는 것, 이른바 ‘갑을’관계를 이용해 이득을 내는 관행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발상이 반(反)시장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이태희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는 “원가를 공개하는 순간 여론 혹은 정치논리로 이익률이 정해지므로 기업들은 경쟁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정부 “소비자보호·갑질근절” 내세워
통신비·택배 값·수수료 인하 요구
“여론·정치논리로 이윤 정해지면
기업들이 경쟁할 이유 없어져”
물론 원가 공개가 이뤄지는 분야도 있다. 영국·동유럽 등 일부 국가의 경우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이 공급하는 전력·가스 등의 제조원가는 공개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가격이 책정된다. 국내에서도 2011년 전기, 열차, 도시가스 도매, 광역상수도 도매요금 등 6개 주요 공공요금 원가를 공개했다. 요금체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공공영역과 달리 민간은 수익 창출 극대화가 목적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독점적인 공공영역과 경쟁이 치열한 민간영역은 시장 자체가 다르다”며 “민간에서는 원가 공개 이슈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10대 그룹 계열사 사장은 “원가 구조를 밝히는 건 경쟁사에 자기 패를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전문가들은 경쟁 시장 안에서 원가를 공개하는 것은 득(得)보다는 실(失)이 더 많고 자칫 독(毒)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심교언 건국대 경영대학 교수는 “일률적 원가 공개는 정부의 생색내기 정책”이라며 “시장경제 활력을 죽이는 ‘교각살우’식 처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정부가 나서서 무리하게 원가 공개를 요구했다가 민간의 반발에 부닥쳐 흐지부지된 일이 반복됐다. 2007년 문화관광부는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공연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는 지적에 따라 공연 원가 실태조사에 나섰고, 2010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석유제품의 원가를 공개하라고 했지만 결국 모두 무산됐다.
세종=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