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분쟁 희생양 된 퀄컴, NXP 인수 결국 포기

중앙일보

입력 2018.07.26 10:24

수정 2018.07.2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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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공룡' 미국 퀄컴이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 희생양이 됐다.
 
스티브 몰렌코프 퀄컴 최고경영자(CEO)는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NXP 인수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미국 CNBC에 따르면 퀄컴은 NXP 지분을 사는 대신 300억 달러(34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기로 했다.

중국, 인수 승인 미루며 시간 끌어
1년 9개월 추진한 ‘빅딜’ 무산돼
퀄컴은 수수료 2조원대 물어야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NXP를 인수하려던 퀄컴이 중국 정부의 승인 거부로 계획을 포기했다. [AP=연합뉴스]

 
몰렌코프 CEO는 "인수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25일이 지나면 새로운 진전이 있을 때까지 NXP 인수 추진을 종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퀄컴은 2016년 10월 NXP 인수 추진 계획을 밝혔다. 오가는 돈만 440억 달러(50조원)로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유례없던 초대형 딜로 주목받았다. 
 
인수가 성사되려면 한국, 유럽, 일본 등 양사 합병으로 시장에 영향을 받는 주요국 9개 국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8개 국가는 승인을 완료했지만, 중국 상무부는 지난 4월 "퀄컴의 NXP 인수는 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승인을 미뤄왔다.
 
중국 정부의 승인 시한은 미국 동부 시각으로 25일 자정까지다. CNBC는 소식통을 인용해 "밤 11시 59분 이전 막판에 중국 정부가 인수를 승인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퀄컴 측은 그 가능성을 아주 희박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양사 인수 승인 여부를 공식적으로 발표할 의무는 없다. 만일 마감 시한까지 중국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면 인수는 자동으로 무산된다. 그럴 경우 퀄컴은 NXP에 20억 달러(2조3000억원) 규모의 종결 수수료를 내야 한다.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NXP를 인수하려던 퀄컴이 중국 정부의 승인 거부로 계획을 포기했다.

 
한때 중국 정부가 인수에 긍정적으로 돌아섰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격화일로인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340억 달러(38조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매긴 데 이어, 24~25일 공청회를 열어 160억 달러(18조원) 규모의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논의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나아가 지난 20일 "중국에서 수입되는 5000억 달러 규모의 모든 제품에 관세를 매기겠다"고 위협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관영 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24일 밤 "미국이 16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추가 부과하면 중국은 그와 동일한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중국은 보복 관세 부과가 가능한 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 목록을 발표한 바 있으며 추가로 160억 달러 규모의 제품에도 언제든 보복 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의 청펑잉 연구원은 "공청회는 절차일 뿐 미국의 추가 관세는 거의 확실시된다"며 "그럴 경우 중국 정부는 즉각 응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또 다른 보복 조치의 하나로 퀄컴의 NXP 인수 반대를 꼽았다. 중국 전자정보산업발전연구원의 리우쿤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인수 무산이) 중국 내 시장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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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XP를 인수해 차량용 반도체 시장으로 사업을 다변화하려던 퀄컴 계획은 틀어졌다. 퀄컴의 황금알이었던 특허 부문은 성장세가 차츰 더뎌지고 있다. 다만 NXP 인수 불발이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시각도 있다. CNBC는 "퀄컴이 자사주 매입을 통해 새로운 사업으로 확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퀄컴 주가는 1% 상승 마감했다.
 
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