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논설위원이 간다] ‘이해찬 변수’ 속 의외의 막판 역전극 가능성도

중앙일보

입력 2018.07.2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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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의 정치 속으로

더불어민주당 차기 당대표 예비 후보들이 24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초선의원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논쟁을 벌었다. 왼쪽부터 최재성, 김두관, 박범계, 김진표, 송영길, 이해찬 후보. [뉴시스]

D-1 민주당 전대 컷오프 판세 
“존경하는 채 구청장님! 저 ○○○입니다. 지난 선거에서 제가 구청장님 응원한 거 기억하시죠? 이번에는 저 좀 도와주세요”
 
문재인 청와대의 행정관 출신으로 지난 6·13 지방선거에 더불어민주당 영등포 구청장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채현일 구청장. 그는 요즘 휴대전화가 진동음을 낼 때마다 긴장한다. 26일 치러질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1차 투표(컷오프)를 앞두고 예비후보로 등록한 민주당 거물 정치인 8명이 하루에도 몇번씩 러브콜을 걸어오는 탓이다. “전화만 오는 게 아니다. 상당수가 나를 만나러 직접 영등포에 온다. 꼭 자신을 찍어달라고 얘기하는데 다들 내가 존경하는 분들이라 ‘응원합니다’는 말로 대신한다.”

친문 4명 등 8명 난립 ‘전화통 전쟁’
이해찬 막판 등판, 판세 확 뒤집어

추미애·김부겸·이재명 등이 원군
당선 시 정계개편 깜짝 카드 가능성

악재 만난 김진표·최재성 반격 나서
김진표, 정세균 지원 업고 친문 공략


최재성, 청와대가 간접 지원 가능성
송영길, 호남표·비문 후보 TO 노려

채 구청장 말대로 이해찬·김진표·최재성·송영길·김두관·이종걸 등 전당대회 예비후보들은 요즘 일과가 전화통과의 씨름이다. 당 대표 1차 관문인 컷오프는 민주당 국회의원과 광역·기초단체장 및 지역위원장 등 당의 선출직 엘리트 460여 명이 유권자다. 공천으로 얽힌 인연이 중요하고 계파 안배 논리와 스킨쉽도 크게 작용한다. 후보들이 죽자사자 전화통에 매달리는 이유다. 2년 전 전당대회 예비후보(4명)보다 2배나 많은 후보가 난립한 것도 ‘전화 싸움’이 격렬한 배경이다.
 
민주당 사람들 상당수는 이번 전당대회가 ‘이해찬 전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비문계로 전대에 출마한 이종걸 의원은 “그가 나오지 않았을 때 내 당선 가능성이 50%였다면 그가 나온 지금은 내 당선 가능성이 25%로 떨어졌다”고 했다.
 
이해찬은 후보 등록 마감 전날인 지난 20일 아침까지 장고를 거듭하다 출사표를 던졌다. 그 이유는 우선 청와대 의중과 관련 있다. 이해찬은 자신 말고는 ‘차기 당 대표감’으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등판 여부를 주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 장관을 면직해 전당대회 출전을 허용한다면 김 장관은 ‘문심’이 실린 후보가 된다. 그럴 경우 이해찬이 전대에 나와 ‘대통령의 후보’와 겨루기는 어렵게 된다. 그런데 김 장관이 지난달 26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내 대표 출마(여부)는 대통령이 정할 문제”라고 밝히는 바람에 문 대통령은 김 장관을 면직시키기 어렵게 됐다. 결국 김 장관은 대표 꿈을 접었다. 한 초선 핵심 친문 의원은 “김 장관의 자승자박 때문에 이해찬 의원이 출마의 날개를 단 것”이라고 했다.
 
더 큰 이유는 이해찬의 절묘한 타이밍 감각이란 분석도 나온다. 수도권 다선 비문계 중진 의원의 분석이다. “이해찬이 출마를 선언한 20일은 리얼미터 조사 결과 문 대통령 지지율이 60%대 초반으로 확 빠진 날이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갔다면 이해찬은 나올 명분도, 의지도 없었을 거다. 하지만 정권 인기가 내리막 가능성이 생기자 그가 잽싸게 구원투수를 자임하고 나온 거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해찬은 원군도 막강하다. 우선 추미애 대표가 이해찬을 민다. 추 대표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해찬을 수석 공동선대위원장에 앉혀 자신과 ‘투톱’이 되도록 했다. 대표 다음으로 막강한 지위를 준 것이다. 이해찬이 전대 출마를 놓고 장고를 거듭할 때 출마를 강력히 권유한 이의 한 사람도 추 대표라고 한다. 수도권 재선 의원은 “추 대표는 2년 전 총선, 1년 전 대선, 올해 지방선거에서 다 이기고 임기 2년을 채운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게 됐다. ‘복장(복이 많은 지도자)’이다. 이를 바탕으로 차기 대권을 꿈꾸는데 그걸 도와줄 최적의 파트너로 이해찬을 택한 듯하다. 추 대표와 가까운 지역위원장과 자치단체장들이 이해찬을 밀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이해찬 편이다. 이해찬의 최측근 이화영 전 의원이 경기도 연정부지사에 임명된 것부터 둘의 가까운 관계를 입증한다. 이재명 캠프 소식통에 따르면 이재명은 6·13 지방선거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경선을 앞두고 이해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해찬은 이화영을 이재명 캠프에 보내 총괄본부장으로 활동하게 했다. 당시는 핵심 친문 전해철이 이재명과 후보 자리를 놓고 혈투를 벌이는 상황이었다. 한 경기 지역 중진 의원은 “이런 마당에 친문 좌장격인 이해찬이 이재명에게 측근을 붙여준 것은 대놓고 전해철에 비토를 놓은 거나 다름없었다. 이재명이 전해철을 꺾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여배우 스캔들에 이어 조폭 연루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이재명이지만 그의 조직력은 만만치 않다. 오랫동안 SNS에서 이재명을 지지해온 ‘손가혁’ 그룹(이재명 지지자 그룹)이 본선에서 이해찬을 밀 경우 그 파괴력은 상당할 것이라고 수도권 중진 의원은 전망했다.
 
이재명과 이해찬의 인연은 이재명의 성남시장 시절인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 지역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재명은 당시 성남문화재단의 뮤지컬 ‘금강 1894’의 평양 공연을 추진했는데 이때 대북 사업 경험과 인맥이 강한 이해찬 측의 도움을 받으며 가까워졌다. 급조된 친분이 아니다”고 했다. 다만 이재명 본인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특정 후보 지지 여부를 언급할 수 없다”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전대 출마를 포기한 김부겸도 현직 민주당 의원으로서 이해찬을 밀 공산이 크다. 이해찬은 청와대 측에 “김부겸이 출마한다면 나는 안 나갈 것”이라며 출마를 미루다 김부겸이 불출마를 결정하자 출사표를 던지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둘의 관계도 긴밀하다. 서울대 70년대 학번 선후배로 운동권에서 연을 맺은 이래 상부상조해온 친분이 깊다. 김부겸의 조직력도 상당하다. 대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3수 만에 당선된 스토리 덕분에 팬들이 많다. 특히 TK(대구·경북) 지역 민주당 원외위원장들에게 김부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들은 1차 투표에서 이해찬을 밀 공산이 크다.
 
이해찬의 등판으로 직격탄을 맞은 이들이 ‘정통 친문’ 후보를 자임해온 김진표와 최재성이다. 하지만 둘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우선 김진표는 친문 주류 표 흡수에 전력을 기울여왔다. 6·13 지방선거 경기지사 경선에서 ‘전해철의 선대본부장’을 자임하며 대놓고 그를 밀었다. 친문 핵심으로 조직력이 상당한 전해철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란 해석이 나왔다. 수도권 한 의원은 “전해철은 최근까지 ‘김진표의 은공을 잊을 수 없다’는 말을 주변에 하고 다녔다”며 “다만 이해찬 출마 뒤 전해철의 입장이 ‘중립’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대표와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세균이 김진표를 밀고 있는 것도 김진표에게 힘이 된다. 정세균은 지난 13일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원내외 지역위원장 수십명을 한자리에 모아 “김진표를 찍어달라”고 했다고 한다. 무주·진안·장수가 과거 지역구였던 정세균의 영향력이 큰 전북 지역 자치단체장들에게도 같은 메시지가 전해졌다고 한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국회의장까지 지낸 정세균이 전대에서 특정 후보를 미는 정치적 행동을 하는 건 본인의 대권 구상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세균은 주변에 ‘국회의장으로 (정치인생이) 끝이 아닌 첫 사례가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는 것이다. 이 재선의원은 “정세균은 2011년 김진표가 원내대표에 출마하자 그를 지지해 당선에 도움을 준 관계”라며 “자신과 친한 김진표를 대표로 옹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2022년 대선에 도전하려는 의도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재성은 ‘세대교체’론으로 이해찬 바람에 맞서고 있다. 그는 이해찬이 출마를 선언하자 “지난 15년 동안 대선배들이 주역이었던 정치체제를 극복해야 할 때”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해찬 출마에 따른 최재성의 득실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일반적인 분석은 “지지층이 겹치는 가운데 2년간 국회를 떠나있던 최재성이 이해찬에게 밀릴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다른 전망을 했다. “문 대통령의 정치 대선배인 이해찬이나 성장주의자 김진표는 청와대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면 최재성은 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자진해서 총선 출마를 포기하며 그를 지켜주는 등 충성심과 실행력이 뛰어나다. 청와대가 어떤 식으로든 그의 당선을 바랄 가능성이 있다” (이해찬도 자신에게 가해지는 이런 비판을 의식해 ‘차기 총선 불출마’ 공약을 걸어 세대교체론에 맞서고, 대표 당선 뒤 민주평화당과의 합당이나 선거구제 개혁 등 정계개편을 추진할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이밖에 비문 후보 계열에선 유일한 호남(고흥) 출신 후보 송영길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 2016년 전당대회에서 컷오프당한 아픔을 겪은 뒤 2년 내내 전국을 돌며 조직을 다진 데다 1차 투표에서 투표권을 가진 호남 출신 지역위원장과 자치단체장이 100명에 육박하는 게 그의 강점이다. 송영길은 “그동안 민주당은 대통령도 당 대표도 영남 출신이 맡아온 만큼 호남 출신이 당권을 잡아야 균형이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수도권 재선 의원은 “‘이해찬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과거 민주당 전당대회 역사를 보면 의외의 역전극이 많아 의원들이 정중동인 상황”이라고 했다. 1970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한 김영삼이 2차 투표에선 3위 이철승의 지지를 얻은 2위 김대중에게 역전패당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의원은 “이번엔 친문 후보가 1, 2위에 오르고 3위는 비문 후보가 차지할 공산이 큰데 이 3위 후보가 48년 전 이철승처럼 본선의 향배를 결정할 것”이라며 “3위 후보가 누굴지에 모든 의원들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라고 했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