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카메라와 채집도구 등을 둘러 맨 10여 명이 모여 작전을 짜고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멸종위기 Ⅰ급 산양을 현장 조사하기 위해서다.
대학 연구원에서부터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생태원, 한강유역환경청까지 생태 전문가들이 이번 조사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정상용 강원대 연구원은 “전국에서 산양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은 전부 모인 것 같다. 그만큼 서울에 산양이 나타난 건 전문가들한테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합동 조사단은 조를 나눠 산양의 흔적을 찾기 위한 조사에 나섰다. 기자도 한 팀을 따라 산에 올랐다.
공원 산책로를 벗어나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산속으로 들어가니 흡사 밀림에 와 있는 것처럼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그때였다. 다른 조에서 산양을 봤다는 신호가 전해졌다. 급히 공원 아래로 내려가니 바위 절벽 중간쯤에서 산양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뿔이 양쪽으로 벌어져 있다는 건 수컷이라는 뜻이죠. 크기로 봐서는 4~5살 정도 된 것 같네요. -조재운 종복원기술원 책임연구원
미스터리 1. 산양은 언제 서울로 왔을까
용마폭포공원에서 축구장을 관리하는 강경노(64) 씨가 우연히 절벽에 서 있는 동물을 목격했다.
처음에는 고라니인 줄 알았어요. 근데 자세히 보니 생김새가 다르더라고요. 인터넷 검색도 하고 공부도 해보니 멸종위기 동물인 산양이란 걸 알았어요. -강경노씨.
이후 강 씨는 지난달 14일 ‘산양을 봤다’고 종복원기술원에 제보했고, 전문가 조사 결과 산양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현장 조사에서 전문가들은 산양이 최소 1년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것으로 추정했다.
나무 줄기에 산양이 긁어 놓은 상처가 단서였다.
산양은 뿔로 나무껍질을 벗겨서 자기 영역표시나 의사소통을 해요. 상처가 많이 아물어 있는 것을 보니 시간이 그만큼 지났다는 것이죠. 산양이 이곳에서 적어도 1년 이상은 살지 않았나 추정됩니다. - 조재운 책임연구원
미스터리 2. 산양은 어떻게 서울로 왔을까
과거에는 전국적으로 분포했지만 서식지 파괴와 무분별한 포획으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현재는 남한에 700~900마리 정도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산양 서식이 확인된 곳은 강원도 설악산과 삼척, 경북 울진, 그리고 충북 월악산 정도다. 모두 서울 용마산에서 100㎞ 이상 떨어진 곳이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는 경기도 포천에서 2013년 10월에 산양 1마리가 올무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됐다.
현재로썬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서울 북부까지 이어지는 한북정맥을 따라 산양이 이동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 책임연구원은 “산양이 확인된 포천 천보산에서 용마산까지는 직선거리로 30㎞정도”라며 “산양이 산지를 따라 남쪽으로 한강 근처까지 내려오다가 용마산에서 서식지를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자 이번에는 북부간선도로가 산양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간선도로 위로 군부대를 연결하는 충군육교가 눈에 띄었다. 사실상 산양이 건너올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보였다.
미스터리 3. 산양은 서울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
산양이 머무는 절벽 지대는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돼 있고, 삵이나 담비 같은 천적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산양이 서식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도시 지역의 특성상 산양이 들개의 위협을 받거나 서식지를 벗어나 이동하다가 로드킬을 당할 위험도 있다.
합동 조사단은 현장에서 채취한 산양 분변과 털 등의 유전자를 분석해 성별과 개체 수 등을 파악한 뒤에 보호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현재로써는 서울 산양을 강원도 등 주요 서식지로 옮기기보다는 용마산에 안착할 수 있도록 서식지를 보호하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손장익 종복원기술원 북부복원센터장은 “겨울이 되기 전에 서울 산양에 대한 보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무인카메라 분석과 서식지 조사 등을 통해 서울 산양의 서식지 보호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