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직시해야 할 사실은 조현병을 비롯한 중증정신질환과 범죄 사이에서 연관성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폭력과 정신질환 간의 관계를 살펴본 대표적 연구는 200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진행됐다. 에릭 엘보겐 교수팀은 3만명이 넘는 방대한 미국 인구통계 자료에서 폭력 행동을 예측하는 요인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한 개인의 폭력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중증장애 여부가 아니라 약물 남용·아동 학대를 포함한 불우한 환경과 폭력에 의한 피해 등이었다.
정신분열병과 범죄 연관성 낮고
‘정신이상=조현병’ 성립 안 해
범죄 피해자인 정신질환자 많아
격리·관리 아닌 보살핌 받아야
검찰청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에서 정신장애 관련 강력범죄 건수가 증가한 것은 2014년으로, 전년도에 300여명에서 700여명으로 급증한다. 그런데 바로 같은 해 한국에서 전체 강력범죄 건수도 비슷한 비율로 급증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전체 강력범죄에서 정신장애 관련 범죄 건수의 비율 증가는 동년 2.19%에서 2.46%로 약간 증가해 그 비율이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보고되는 정신장애 관련 강력 범죄 건수의 증가는 전체 강력 범죄 건수 증가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지난 6일 노모를 살해한 가해자의 경우 교통사고 이후 정신 이상이 관찰돼 뇌 손상 병력이 의심됐으나 조현병 환자라고 성급하게 단정적으로 보도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정신이상=조현병’이란 공식은 조현병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부채질할 수 있다. 실제로 조현병 환자들은 중증 정신장애인들로, 폭력의 가해자이기보다는 피해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
최신 미국 의학회지(JAMA)에 덴마크 경찰청의 대규모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 피해 연구 결과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기존의 편견과 정반대로, 모든 정신질환자는 폭력 범죄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으며, 이는 피해자가 촉발하지 않은 범죄들로 조사됐다.
또한 여러 나라의 조사들에서 어린 시절 아동학대를 당한 중증 정신장애인은 10명 중 3~7명이었다. 일반인들의 경우(100명 중 1명 이하)보다 매우 높게 보고됐다. 부모에 의한 학대 외에도 학교나 이웃으로부터 당한 폭력의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조현병은 격리 및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보살핌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선진국은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한 중증 정신장애 케어 시스템이 이미 자리 잡았는데 한국은 이제 막 시작됐다. 증상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꾸준한 약물 복용과 함께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는 환경의 중요성이 오래전에 확인됐다. 이에 선진국에서는 정신건강 전문의와 함께 심리학자·사회복지사·간호사와 같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이 무조건적인 격리보다 더 효과적인 이유는 인간 행동의 다차원적인 요인들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질환의 예후와 관련된 다양한 평가도 가능해져 이에 기반을 둔 적정한 인지 및 사회 재활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한국도 객관적인 사실과 과학에 기반을 둔 중증정신질환 정책들과 지역사회 케어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될 수 있도록 정부와 전문가들이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최진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한국임상심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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