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부산에서 태어난 노 원내대표는 73년 경기고에 입학하며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1학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반대한다는 유인물을 뿌렸다. 당시 함께했던 이가 동기였던 이종걸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노회찬 사망] 그가 걸어온 길
고1 때 이종걸과 유신 반대 운동
인민노련 재판서 “난 사회주의자”
2004년 ‘민노당 바람’ 국회 입성
“삼겹살도 판 갈아야” 등 숱한 어록
노 원내대표는 복역 이후 초점을 노동현장에서 제도권 정치 쪽으로 바꾼다. 대중 진보정당 건설이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바꿀 것이라 기대했다. 그는 진보정당의 시초인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대표로 활동하는 등 여러 진보정당 창당 작업에 참여했다. 노 원내대표는 2000년 권영길 전 의원과 함께 민주노동당을 창당하며 제도권 정치에 본격 도전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민노당 바람’을 이끌었다. 노 원내대표가 대중적 인기를 얻은 것도 이때다. 방송 토론에서 보여준 촌철살인 말솜씨가 화제가 됐다. 그는 한나라당을 향해선 “삼겹살도 50년 동안 같은 판에 구우면 타 버리니 갈아야 한다”고 했고, 열린우리당을 향해선 “한 일도 없이 인기가 올라가는 횡재를 했는데 길 가다 지갑 주웠으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노 원내대표의 활약 등에 힘입어 17대 총선 당시 민노당의 비례대표 정당 득표율은 13%까지 올랐다. 그는 비례대표 8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노 원내대표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경남 창원성산을 지역구로 내려가 새누리당 후보를 꺾으며 다시 원내로 진입했다. 그는 정의당 3, 4기 원내대표를 내리 맡는 동안 당 지지율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리며 ‘진보진영의 아이콘’으로 입지를 굳히는 듯했다. 하지만 ‘드루킹’ 김동원씨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가 특검 수사 중 불거지면서 노 원내대표의 발목을 잡았다.
그가 생의 마지막으로 택한 곳은 모친 집이었다. 모친은 노 원내대표가 고려대 재학 시절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하자 “노동운동을 하려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알아야 한다”며 신문 노동계 뉴스를 부산 집에서 스크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 원내대표는 2004년 총선을 준비하며 민노당 홈페이지에 ‘선거대책본부 일기’를 올렸는데 그중 한 문장이 “못난 아들 때문에 노모의 고심이 크다”였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