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인사이드] 해병대 헬기 추락…아군 쏘아 맞추던 영국군 기관단총 실패 돌아봐야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은 영국군 30만 명을 북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에서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던 이들은 해군, 공군의 필사적인 노력에 힘입어 구사일생으로 바다를 건너 도망가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살아남은 병력은 이후 영국 본토 방어에 귀중한 자원이 됐다. 그런데 독일군과 교전을 경험한 후 병사들은 보다 좋은 무기를 공급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중에는 기관단총도 있었다.
독일군이 근접전에서 난사하는 MP40 기관단총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기에 같은 무기가 있어야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국도 앞선 제1차 대전에서 혹독한 참호전을 치렀기에 기관단총이 근접전에 효과적인 무기임을 알고는 있었다. 이처럼 결코 낯설지는 않았지만 영국군은 사거리가 짧고 파괴력이 약하다며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고 개발도 등한시했다.
덩케르크에서 쫓겨난 영국군 뒤늦은 후회
독일군 MP40 본 뒤 기관단총 서둘러 개발
1년 만에 실전배치…아군 맞추는 불량품
마리온 원조 수리온, 제작기간 너무 짧아
대신 제2차 대전 발발 당시에 미국으로부터 톰슨 기관단총 소량을 도입해 운용했으나 이마저도 대부분 덩케르크 해안가에 버리고 온 상태였다. 이처럼 절실히 필요하게 되자 미국에 톰슨을 추가 발주함과 동시에 부랴부랴 국산 기관단총의 개발에 나섰다. 한마디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다음에 움직인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불과 1년 만에 개발을 끝내고 1941년부터 일선에 보급된 기관단총이 스텐(STEN)이다.
처음부터 대량 생산을 염두에 두었기에 형태와 구조가 단순했고 제작비도 저렴했다. 종전 때까지 약 400만 정이 제작되었는데 이는 그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MP40의 생산량이 110만 정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조급했던 당시 영국의 상황을 그대로 대변한 대표적인 무기라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탄생 당시에 스텐은 온갖 악평을 들었을 만큼 품질이 나빴다.
문제점을 해결한 후기형이 등장하기 전의 모델들은 일선에서 사용하기를 꺼렸을 정도였다. 고속 연사를 위해 채택한 오픈볼트 방식 총들의 일반적 특징이지만 스텐은 유독 충격에 약했다. 실수로 떨어뜨리면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오작동 되었고 이를 피하려 병사들이 도망 다니는 일이 흔했다. 거기에다 사격 시 급탄 불량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문제가 많았던 이유는 개발과 배치를 너무 서둘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총이 여타 무기에 비해 간단하다 하더라도 개발에서 실전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1년이라면 완벽한 성능을 바란다는 것이 어쩌면 과한 욕심이다. 하지만 제2차 대전이라는 상황은 무기가 일단 작동되면 투입 후에 개량해나가도록 만들었다. 스텐은 추후 문제점을 완벽하게 해결하고 1960년대까지 사용하는 영국군의 주력 기관단총이 되었지만 그러기 위해 막을 수도 있었던 많은 희생과 피해를 치렀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