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북한과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매우 잘 되고 있다”며 “우리가 속도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재는 유지되고 있고 인질들은 송환됐으며 9개월동안 로켓 발사도 없었다”며 “북한과 관계가 매우 좋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시간의 제한, 속도 제한이 없다”며 “우리는 단지 과정을 거치고 있을 뿐”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는 전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비핵화 협상을 놓고 “우리에겐 시간이 있고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수년 동안 진행돼 온 일”이라고 했던 것에서 ‘비핵화는 시간 제한이 없는 과정’으로 더욱 물러선 듯한 발언이다.
당초 백악관은 이렇지 않았다. 강경파였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달 1일 북핵,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 프로그램과 관련 “1년내 폐기할 방안을 고안했다”고 단언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곧바로 부인하기는 했지만 백악관이 대북 협상을 위해 비핵화 속도전의 압박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관측이 다수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잇따라 비핵화 시간표를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내놓으며 사실상 비핵화는 속도전이 아니라 북ㆍ미 협상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참호전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유해송환·실무협상 시간끄는 북한 눈치보기
수미 테리 "북, 초박막 살라미전술 수년 끌 것"
비핵화ㆍ종전선언 동시 추진도 의회가 반대,
11월 미 중간선거까지 협상만 하는 교착상태
백악관이 급격하게 입장 변화를 보인 것은 북한의 핵 포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현실을 파악했거나,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를 의식해 업적 관리에 나설 필요성을 느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을 앞두고 북한을 의식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문제는 한때 최고의 압박을 통한 비핵화 전략을 고수했던 미국이 이번에는 정반대로 ‘시간 제한이 없는 비핵화’를 거론하면서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말려드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전성훈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처음부터 스텝이 꼬였다. 북한이 얘기하는 비핵화와 미국이 얘기하는 비핵화는 다른데 접점을 찾지 못한 채 결국 북ㆍ미 입장이 평행선으로 가고 있다”며 “미국 정부는 최소 중간선거까지 군불을 때며 분위기를 끌고 나가려다 보니 본말이 전도되고 북한도 유해송환이나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기 등 지엽적인 선물로만 호응하려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박유미 기자 jjpo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