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이야기를 듣고 시원하게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런 모습이 꼭 학교 운동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까닭이다. 자기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출세와 영달을 위해 오로지 권력의 그림자만 좇는 군상들이 이 사회 곳곳에 포진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민간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참견할 수는 없을 터다. 하지만 공공부문에서조차 자기 자리를 지키는 대신 공만 쫓아다니는 일이 비일비재 벌어지고 있다.
할 일은 않고 권력만 좇는 무리들
공복답게 일하라 일갈해야 지도자
정권에 따라 춤추는 정책 앞에서 영혼을 버리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공무원들도 역시 익숙한 풍경이다. 대규모 유통업법 개정안 정도는 말할 것도 없고, 4대 강이나 원전 문제처럼 국가의 틀을 바꿀 대형 국책사업도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입장을 바꾼다. 처음부터 국가는 보이지도 않았고 책임이란 안중에 없었으며 오직 ‘먹고사니즘’만이 삶의 방향지시등이었던 거다.
정말 가관인 건 자기 임무를 망각한 채 권력자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던 일부 군인들이다. 국가안보보다 정권안보, 궁극적으로는 자기안보에만 관심이 있는 정치군인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군사기밀을 지키는 게 임무인 기무사가 세월호 인양을 비효율적으로 느끼는 여론을 확대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할 이유가 없다. ‘대국민 담화 간 대통령 이미지 제고 방안’이란 문건을 만들어 감성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더욱 웃을 수 없던 이유는 흔히 현실은 후배 아들의 축구와 다른 결과를 낳기 때문이었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임무를 다하는 사람보다 공만 쫓아 뛰는 사람들이 더 자주 기용되고,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죽자 사자 공만 보는 거고, 그래서 구태가 반복되는 거고, 그 사이 국가는 골병이 드는 것이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미생’에서 오 차장이 천 과장한테 한 말이 떠오른다. “회사에 왔으면 일을 해! 게임하지 말고.” 컴퓨터 게임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대신 공만 쫓는, 자기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대신 윗사람 눈길 바라기만 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자기 앞에서 딸랑거리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절실한 시기다. “공복이 됐으면 네 일을 해!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이훈범 논설위원